일본은 도쿄대를 비롯한 89개 국립대가 2004년 4월 일제히 법인화됐다. 2003년에 제정된 국립대학법인법에 따른 것. 한마디로 대학도 경쟁과 적자생존의 예외일 수 없다는 논리였다. 앞서 1990년대 말 자민당 정권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국가공무원 감축에 나섰고 주요 대상은 국립대 교직원이었다. 2000년대 초까지는 국립대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대학이 경제논리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논리에다 공무원 신분을 잃게 될 교직원의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 열풍이 불었던 당시 일본 사회에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대부분 채택하고 있는 법인화 추세를 대학만이 거부할 수는 없었다. 2002년경 일본 국립대는 대세를 수용하고 ‘법인화 이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상당수 국립대는 법인화 이후 대학 재량권이 늘어나고 학내 연구풍토도 활발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문부과학성의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 간 경쟁과 평가제 도입 등으로 인해 교육내용이 충실해지고 교육활동의 질이 향상됐다. 종전에는 문부과학성이 인사권과 재정권을 틀어쥐고 국립대를 직접 통제했으나 법인화 이후엔 대학들이 특성에 맞게 예산을 책정해 운용하는 게 가능해졌다. 예산 지원이 매년 1%씩 줄었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해 대학이 낭비요인을 줄이고 방만한 조직을 정리하는 등 개혁에도 성과가 있었다.
대학의 자율성이 높아지면서 선택과 집중에 따른 전략적 성장도 가능해졌다. 재료공학 분야에 강점이 있는 도호쿠(東北)대가 학교 차원의 지원을 그 분야에 집중시키는 식의 사례가 늘었다. 대학이 경영 마인드를 도입하면 등록금이 급속히 올라갈 것이라던 우려는 별로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가 등록금을 올리면 교부금을 깎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부정적 측면도 만만찮다. 줄어드는 교부금만큼 씀씀이를 줄이거나 외부에서 기부금 등을 끌어와야 하는데 상당수 지방·소규모 국립대의 경우 둘 다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연구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서도 대규모·명문 대학을 당하기가 쉽지 않다. 일부 대학은 고정비 성격이 강한 인건비 대신 연구비를 줄였는데 당장 돈이 안 되는 기초학문이 희생양이 된 경우가 많다. 국립대 전체의 인문학 교원 수는 2004년 5648명에서 2007년 5490명으로 3년 만에 2.8%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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