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이모 군(13·서울 강남구)은 3월 셋째 주에 열린 환경미화 때 학급친구들에게 ‘교실 꾸미기의 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학급 대청소 때 사물함 뒤 공간까지 꼼꼼히 쓸고 닦은 건 기본. 이 군은 포토숍 프로그램을 사용해 칠판 옆에 붙일 학급시간표를 직접 디자인했다. 형형색색 도화지를 오려붙여 ‘나의 꿈 찾기, 다양한 직업의 세계’ 같은 게시물도 만들었다. 교실에 두기 위한 꽃과 화분을 고를 땐 “‘틸란드시아’라는 식물을 벽에 걸어놓으면 싱그러운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습기조절에도 도움이 된다”며 전문가적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 군은 도대체 이 모든 환경미화의 기술을 어떻게 익힌 걸까. 다음은 이 군의 설명.
“초등학교 때 여자 담임선생님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 노하우예요. 6년 내내 여자 담임선생님 학급에 배정됐는데 모두 한결같이 깔끔한 청소를 강조하셨거든요. 포토숍 프로그램이나 예쁜 꽃과 식물 이름도 여자 담임선생님들께 배웠죠. 덕분에 중학교 첫 환경미화에서 1등을 차지했어요.”
남학생들이 ‘여성화’되고 있다. 요새 남학생들, 여학생 못지않게 꼼꼼하고 깔끔하다. 옷에 흙을 묻혀가며 뛰놀거나 괴발개발 필기를 하던 모습은 이제 옛말. 최소 다섯 가지 색깔의 펜을 사용해 화려하고 깔끔하게 노트를 정리한다. 수업시간 교사가 나눠준 프린트를 노트 크기에 정확히 맞춰 자르고 깨끗하게 붙여놓기도 한다. 또 체육수업 때 자유시간이 주어져도 축구 대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남학생 무리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남학생들에게 이런 변화가 생긴 이유는 뭘까? 적지 않은 교사 및 학생들은 “초중고 여교사 수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게 큰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남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여선생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교사들의 꼼꼼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고 배울 기회 역시 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감은 “초중학교 남자아이들의 경우 여교사의 말투나 걸음걸이, 글씨체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심지어 애니메이션 캐릭터상품 모으기나 요리, 십자수 같은 취미생활까지 따라 하는 남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수행평가에서도 남학생들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요즘 남학생들은 수행평가의 내용뿐 아니라 겉모습에도 신경을 쓴다. 중1 강모 군(13·서울 노원구)은 “일반적으로 수행평가 기간에 여선생님들이 남자선생님들보다 더 자주 학생들을 찾아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어려운 점은 없는지 등을 세세히 물어본다”면서 “이런 이유로 보다 꼼꼼하고 면밀하게 수행평가 과제를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3 오모 군(15·서울 서초구)은 3주 전 사회 수행평가인 ‘나만의 역사신문 만들기’ 준비를 시작했다. 이는 우리나라 위인 중 한 명을 선택해 A4용지 넉 장 분량의 신문을 제작하는 방식. 오 군은 세종대왕을 선택하고 교과서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했다. 그가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디자인. 신문기사에 사용할 글씨 모양을 선택하는 데만 거의 두 시간을 고민했다. 1만 원짜리 지폐 이미지를 편집해 ‘세종대왕 신문’이란 로고를 직접 만들었다. 가상 인터뷰 기사 옆에는 직접 세종대왕의 초상화를 그려 넣기도 했다. 또 맨 뒷부분에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게 된 계기를 주제로 네 컷 만화를 그렸다. 오 군이 이처럼 구성과 디자인에 아낌없는 투자를 한 까닭은? 다음은 오 군의 설명.
“국사 담당 선생님이 여자선생님이시거든요. ‘아무래도 여선생님들은 남자선생님들보다 내용뿐 아니라 외적인 요소 또한 비중 있게 평가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에게 국사선생님이 그림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활용했어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여자선생님의 성향과 취향을 최대한 반영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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