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100인의 메시지 “도전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망설이다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라… 실패해도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런 실험을 했다. 무작위로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눴다. 첫 번째 그룹에는 머그잔을 보여주고 얼마에 살지 물었다. 두 번째 그룹에는 똑같은 머그잔을 주는 대신 얼마를 받아야 되돌려줄 것인지 물었다. 두 번째 그룹은 첫 번째 그룹이 지불하려는 가격보다 거의 두 배의 돈을 달라고 했다. 이처럼 대다수 사람들은 무언가를 처음으로 얻을 때보다 갖고 있던 것을 포기할 때 더 높은 대가를 요구한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길을 꿈꾸면서도 기존에 확보해 놓은 안정적인 위치를 버리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의 상당수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면서 ‘지도 밖으로의 행군’에 나섰다.

○ ‘내면의 목소리’가 이정표


데뷔 3년 만에 자신의 고유 브랜드를 선보일 정도로 잘나가던 디자인계의 ‘앙팡테리블(Enfants terribles·무서운 아이들)’이던 하상백 디자이너는 2001년 돌연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주변에서는 “젊은 녀석이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잡지사의 통신원, 사진촬영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지낸 5년은 한국 시절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는 “능동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 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연구원이던 김승환 아태이론물리센터 사무총장은 포항공대(현 포스텍)를 설립하느라 동분서주하던 고(故) 김호길 교수(전 포스텍 학장)가 던진 “한국에 와서 좀 도와주소”라는 한마디에 가슴이 떨렸다. 미국의 안정된 연구 여건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조국에 연구중심 대학을 만드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거부하진 못했다.

‘동아 100인’이 이미 손에 쥔 것을 포기하고 무모해 보이는 미개척지로 뛰어들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서울대 의대 박사로 삼성서울병원의 의사 겸 교수로 살아 왔던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가족간의 불화, 불의의 사고와 질병 등으로 가진 것을 쉽게 잃어버리는 경우를 수없이 지켜봤다. 나 역시 언제든지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경찰대를 나온 엘리트 경찰이던 김상우 국제형사재판소 선임수사관이 승진을 마다하고 돌연 유학을 결정할 수 있었던 힘은 아내의 응원이었다. 유학을 망설이던 그에게 아내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야 당신도, 주위 사람도 행복해질 것”이라며 격려했다. 아시아인 최초의 국제형사법재판소 수사관을 시작으로 국제적 형사사건을 총괄할 수 있는 자리를 꿈꿀 수 있는 것은 아내 덕분이라고 김 수사관은 주저 없이 말했다.

○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

동아 100인은 새로운 선택을 망설이는 젊은 세대에게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1970년대에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버리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가며 대학을 다녔던 김은식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절대빈곤을 벗어나 과거에 비해서는 도전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양 대표는 정당한 방법을 사용한 떳떳한 도전은 두려워할 게 없다고 조언했다.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내가 가진 것은 언제든지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하 디자이너는 “안 하고 후회할 것 같다면, 하고 후회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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