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단 자살 사건을 둘러싸고 서남표 총장(연단)과 학생들 간의 학교정책에 대한 간담회가 8일 오후 7시 대전 유성구 KAIST 교내 창의학습관에서 열렸다. KAIST 제공
서남표 KAIST 총장의 개혁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최근 잇단 학생들의 자살 사건으로 처음으로 등록금 부과 정책이 폐기되면서 앞으로 다른 개혁정책까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 총장은 학생과의 시각 차를 좁히고 현안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8일 오후 학생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가졌다.
○ 묵념으로 시작한 총장과 학생 대화
이날 간담회는 당초 오후 7시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학교 측이 언론 비공개를 요청한 데 대해 학생들이 수용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느라 1시간가량 늦어졌다. 결국 간담회는 비공개로 열렸다. 이날 간담회 도중에 나온 화학과 대학원생 김양우 씨는 “당초 학생들과 총장 사이에 격앙된 분위기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좋은 질문에는 박수를, 좋은 답변에도 박수를 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생명공학부 학생도 “당초에는 살벌한 분위기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4시간 45분에 걸친 토론을 통해 고민을 풀어가는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의장 안에는 피켓도 일부 등장했다. 검은 바탕에 하얀 글씨로 ‘서남표 총장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사과가 아니라 서남표식 개혁의 폐기입니다’ ‘서남표 총장님 이제는 당신의 독선과 아집을 멈출 때입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서 총장은 이날 오후 8시부터 KAIST 교내 창의학습관에서 시작된 학생과의 대화에서 등록금 차등 부과정책의 폐기를 다시 확인했다. 또 각종 정책에 대해 다시 검토할 의향이 있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정책에 대한 검토는 언제든지 하고 있고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와 상황에 맞도록 계속해서 검토한다”며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겠지만 결정은 총장이 하고 최종 승인은 이사회가 할 수밖에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서 총장은 “학생 신상과 관련된 정책의 결정엔 학생이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학업 부담이 크다는 학생들의 불만에 대해 서 총장은 “나도 매사추세츠공대(MIT) 1학년 때 ‘소방호스를 입에 넣고 물을 들이붓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중한 학업 부담을 느꼈다”며 “현재 학년별로 수업 로드를 평가하고 있으니 필요하면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개혁이 난관에 봉착했지만…
KAIST에 따르면 2006년 7월 취임한 서 총장은 그동안 교수 테뉴어 심사제도 강화를 시작으로 수많은 개혁을 추진했다. 교원 인사 분야에서 테뉴어 심사제도 강화와 더불어 우수교수를 파격 임용했다. 학생 선발에서 인성 위주의 입시제도와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일반고교 전형을 도입했다. 연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융합연구를 강화하고 실패하면 위험하지만 성공하면 큰 수익이 보장되는 ‘고위험 고수익’ 연구 등을 강조했다.
일련의 개혁으로 KAIST는 영국 ‘더 타임스’와 대학평가기관 QS가 2009년 10월 발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공학 및 정보기술(IT) 분야 세계 21위라는 국내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거액의 기부자들이 서 총장의 개혁 정책을 지지하며 1300억여 원을 기부했다.
그러나 개혁을 구성원의 동의를 충분히 구하지 못한 채 급격하게 추진한다는 비판 등으로 일부 개혁 과제가 난관에 부닥쳤다. 더구나 지난해 연임과정에서 교육과학기술부 등과 갈등이 깊어져 온라인전기자동차와 모바일하버 등 학교의 핵심 사업 예산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일부 학생들은 등록금 부과 정책이 폐기되자 100% 영어수업에 대한 개선도 요구하는 상태다. 외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트위터에 “차등수업료를 부과하는 KAIST의 상대평가 체제에는 ‘창의성’ 항목이 없다”며 “이런 평가체제로 학생을 쥐어짜다가는 KAIST가 ‘살인자들의 멍청한 기술연구원’(Killers' Advanced Institute of Studpid Technology)이 되고 말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서 총장이 개혁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서울대의 한 보직 교수는 “서 총장이 각종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추진해온 전력에 비추어 쉽게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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