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최상위권인 중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직장엄마 박모 씨(41·서울 송파구). 최근 절친했던 학부모 3명과 ‘절교’했다. 아이가 초등 1학년 때부터 끈끈하게 이어왔던 관계가 어긋난 이유는 ‘팀 수업’ 때문이었다.
지난 주말 오후, 길에서 우연히 아들의 친구 A 군을 만난 박 씨.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묻자 A 군은 당황한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박 씨는 A 군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웃으며 “나 몰래 A 군 뭐 시키느냐”고 묻자 그는 “진작 말하고 싶었는데 미안하다. 사실은 자기(아들만) 빼고 팀 수업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초등 최상위권 그룹이었던 A 군과 몇몇 친구들은 중학 진학을 앞둔 지난해 9월부터 논술 팀 수업을 시작했던 것. 하지만 직장에 다니느라 아이들의 ‘라이드(팀 수업 장소까지 번갈아가며 운전해주는 것)’를 해줄 수 없는데다 박 씨의 아들만 쏙 뺀 것이다. 박 씨의 아들은 독보적인 전교 1등이었다. 박 씨는 “나를 속인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한테까지 절대 말하지 말라면서 6개월 넘게 비밀로 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팀 수업’을 둘러싼 학부모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팀 수업은 예체능부터 영어, 수학까지 비슷한 수준의 학생이 모여 그룹 과외를 하는 형태를 말한다.
팀 수업은 최근 교육현장에서 조별수업이 확대되고 토론 및 발표 수행평가가 중요해면서 논술, 토론, 창의사고력 수학을 중심으로 인기. 여기에 입시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는 영어 및 과학토론대회, 영어 디베이트(토론) 대회, 모의유엔대회가 크게 늘면서 이를 대비하기 위한 팀 수업이 최상위권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늘고 있다.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팀 수업. 하지만 학부모 사이에선 팀 수업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최상위권인 중2 딸을 둔 주부 김모 씨(41·서울 강남구 대치동)는 갈등의 요인으로 ‘수준 차이’를 꼽았다. 외국어고 진학을 목표로 한 딸을 위해 영어 디베이트 대회에 출전할 팀을 꾸린 김 씨. 디베이트는 ‘스피커(발언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첫 번째 발언자는 평가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주제를 던져야하고, 두 번째 발언자는 상대팀 첫 번째 발언에 대한 논리적 반박을 해야 하는 식이다.
디베이트 학원에서 만난 상위권 학생들로 팀을 짰지만 그 안에서도 실력차이는 있었다. 석 달간 팀 수업을 한 뒤 대회에 나갔지만 결과는 탈락. 상대팀 두 번째 스피커의 반박을 재반박해야하는 세 번째 발언자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그 학생을 팀 수업에서 빼기로 결정했고 곧 다른 학생을 영입했다. 김 씨는 “고액을 들여 팀 수업을 했는데 수준이 안 되는 아이 때문에 피해를 볼 순 없다”면서 “학원은 레벨테스트로 반을 나누기 때문에 따르면 되지만 팀은 엄마들이 임의로 진행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수준을 두고 팀 해체까지 이르는 갈등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일대에서도 잘 나가는 강사 위주로 팀을 짜다보니 까다로운 팀 가입과 탈퇴를 둘러싼 갈등도 끊이지 않는다.
한 수학올림피아드 대비 강사는 학생 5명이 반드시 1년을 지속해야 수업을 시작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팀이 내는 전체 회비는 월 150만원. 초등 5학년 5명이 구성됐다.
수업이 4개월 쯤 진행됐을 때 기회가 생겨 아들을 해외로 어학연수 보내려고 했던 주부 B 씨(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배 엄마와의 대화 끝에 연수를 6개월 미뤘다. 선배 엄마는 “이 동네에서 한두 해 보고 말 사이도 아닌데 팀 깨는 엄마는 매너 없다고 소문나서 다음엔 절대 팀 수업에 들어갈 수 없다. 빠질 거면 남은 8개월 치 회비를 다 내고 가는 게 속편하다”고 조언했다.
B 씨는 “한 팀이 최소 월 100만원에서 수백만 원 회비를 맞춰야하기 때문에 중간에 한 사람이 빠지면 남은 사람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면서 “매너 없게 행동했다가 대치동에서 살아남지 못할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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