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복잡한 강남 길?… 구둣방에 물어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3일 03시 00분


區 ‘디디미 봉사단’ 발족…수선대 110곳과 특별 실험

“르네상스 호텔예? 곧바로 300m 올라가이소!” 서울 강남구는 최근 관내 구두 수선 기능미화원 180명을 모아 길 안내 봉사단을 만들었다. 8일 오후 역삼역 앞에서 봉사활동을 v펼치던 오인환 씨(왼쪽)는 “동네 작은 건물 위치, 골목 구석구석 등 세밀한 안내가 가능한 것이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제공
“르네상스 호텔예? 곧바로 300m 올라가이소!” 서울 강남구는 최근 관내 구두 수선 기능미화원 180명을 모아 길 안내 봉사단을 만들었다. 8일 오후 역삼역 앞에서 봉사활동을 v펼치던 오인환 씨(왼쪽)는 “동네 작은 건물 위치, 골목 구석구석 등 세밀한 안내가 가능한 것이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제공
“아저씨, 안산 가는 버스 타려면….”

“(양재역) 7번 출구 앞 버스 정류장으로 가세요.”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양재역 4번 출구 앞 구둣방. 손님이 길을 묻자 구둣방 아저씨 정인조 씨(54)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답했다. 그는 “하도 많이 알려줘서 목적지만 들으면 바로 ‘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문 앞에는 ‘길을 물어보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전광판이 반짝였다.

○ 한 손엔 구둣솔, 한 손엔 동네지도


강남구는 최근 관내 구두 수선대 110곳과 특별한 실험을 하고 있다. 구두 수선 기능미화원 180명을 길 안내 도우미 봉사단으로 위촉해 강남구를 찾은 관광객 및 시민들에게 길을 가르쳐주게 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이후 강남구 거주 외국인(6011명)이 2009년에 비해 갑절 가까이 늘었다. 관광객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관광 안내 부스가 삼성동 코엑스 한 곳밖에 없는 데다 상세한 안내도 되지 않는 등 길 안내에 대한 지원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강남구 관계자들은 구두 수선 기능미화원들이 구두 수거를 위해 동네를 많이 돌아다녀 길눈이 밝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침 이들은 3년 전부터 ‘디디미(신발을 뜻하는 단어) 길안내 봉사단’을 꾸려 자체적으로 봉사하던 중이었다. 강남구는 3개월 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달 24일 발대식을 갖고 운영을 시작했다.

○ “바라지만 말고 스스로 바꿔보자”


평일에는 40∼50명, 주말에는 100명이 정 씨 가게를 들러 길을 묻는다. 구두 닦으랴, 길 안내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길을 알려준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13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아이 둘을 키우는 정 씨는 “아이들에게만큼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보람된 일을 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역삼역 8번 출구 앞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는 오인환 씨(52)는 시민들이 길을 물을 때면 귀찮다며 퉁명스럽게 답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가끔씩 “고맙다”며 정중히 인사하는 손님을 보면서 “바라지만 말고 내가 먼저 바뀌자”는 결심을 했다. 그는 “‘구두닦이’라며 무시당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하루 200명의 길을 안내하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앞으로 봉사단이 사용할 지도와 외국인 안내를 위한 영어회화 안내집 등을 보급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 사업에 대해 운영 실적을 평가한 후 전 자치구로 사업을 확대할 것을 검토 중이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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