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대학 교수와 나눈 이 짧은 인사는 학생지도에 소홀한 대학의 현실을 보여준다. KAIST 학생의 잇단 자살을 계기로 대학에서 전인교육이 사라졌다는 지적에 대한 반응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수평가에서 연구 못지않게 학생교육을 중시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려 한다. 대학도 학생지도 강화방안을 고심하는 중이다. 많은 교수들은 상담전문가의 조언이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와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점점 멀어지는 사제지간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제자들을 위한 조언을 담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지난 연말 출간하기 전에 설문조사를 했다. 전국 대학생 1000명 중에서 교수와 상담을 해본 학생은 5명.
김 교수는 “사제지간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더 충격이었다”며 “제자와 자녀를 위해 가볍게 쓴 책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는 게 기쁘기보다는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교수의 조언을 구하는 학생의 갈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지 않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이 학교 사범대 4학년생인 양모 씨(25)는 “입학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수실에서 상담해 본 적이 없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교수님을 찾아간다는 건 생각조차 안 해봤다”고 말했다. 그는 교환학생으로 뽑혀 다음 학기에 해외로 나갈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지도교수와 면담 한 번 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교수는 “요즘엔 많은 신입생이 학부 단위로 들어오므로 1학년은 내 전공 학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히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며 “대학에 첫발을 디딘 1학년생이 가장 고민이 많은데, 현실적으로 챙겨주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 실적 중심에 학생들은 뒷전
교수와 학생이 멀어진 데는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면서 교육이 설 자리를 잃은 탓이 크다. 값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이 가장 뒷전으로 밀리는 셈이다. 특히 논문 실적에 큰 비중을 두고 교수 역량을 평가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교수와 학생 사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대학이 학교평가를 받으면서 순위가 오르내리는 데 매달리니 교수에게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몇 편 이상, 영어 강의 한 개 이상 같은 조건만을 강조하고, 교수들은 결과적으로 학생지도보다는 실적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
성균관대 박모 교수는 “학교에서는 연구 잘하는 사람에게만 인센티브를 준다”며 학생을 교육하고 지도하는 데는 관심 없는 대학의 실정을 비판했다.
그는 “연구 실적이 높은 사람만 발언권이 있다 보니 학생을 챙기는 교수는 패배자로 인식될 정도이고, 학생 지도는 몇몇 뜻있는 교수에게만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교수도 “학생 한 명을 상담하다 보면 1시간이 훌쩍 흐른다. 나도 모르게 시계를 보곤 하는데 학생도 눈치가 있으니 교수와의 대화를 점점 멀리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한 연세대 교육과학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교류를 많이 하고 싶지만 교수로서의 성과를 위해 상담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곤 한다. 미국에서는 정해진 시간에는 학생들이 편하게 교수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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