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스템 불안 확산]“현금이체 못해 계약 날아갔다” 농협 고객들 소송 움직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6일 03시 00분


■ 전산장애 일부 복구

“내 돈 이상없나…” 사상 초유의 농협 금융전산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15일 농협 영등포지점을 찾은 한 고객이 통장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농협은 이날 각 영업점 피해고객센터에 접수된 보상 요구만 882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내 돈 이상없나…” 사상 초유의 농협 금융전산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15일 농협 영등포지점을 찾은 한 고객이 통장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농협은 이날 각 영업점 피해고객센터에 접수된 보상 요구만 882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사상 초유의 금융전산사고를 일으킨 농협에 대한 고객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특히 농협이 정상적으로 재개했다고 발표한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해도 지연되는 것들이 많은 데다 잔액이 ‘0원’으로 표시되는 등 오류까지 드러내고 있어 고객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전산장애로 피해를 본 고객들은 “며칠째 내 돈을 맘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소송을 준비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 농협 고객 불만 쇄도


15일 농협에 따르면 금융전산사고 이후 피해고객센터에 접수된 고객 보상요구 건수는 이날 현재 882건에 이른다. 이는 수수료 발생, 대출이자 연체 등 입증이 쉬운 피해 보상요구 건수만 집계한 것이다. 이 밖에 지금까지 들어온 각종 민원이나 상담 건수는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 농협의 한 고객은 “컴퓨터를 사러 용산전자상가까지 갔다가 체크카드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구매를 포기하고 돌아와야 했다”며 “생활비를 빼 쓰지 못해 친구들한테 궁색하게 돈을 빌려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 돈을 찾아 쓰지 못하는 불편을 어떻게 입증해야 보상받을 수 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피해 고객과 농협 간 법적 다툼도 가시화되고 있다.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과 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는 농협의 소비자 피해에 대한 보상이 합리적으로 이뤄지도록 피해 사례를 접수해 공동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피해 고객들도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농협 금융거래 피해자 카페’를 만들어 피해사례를 수집 중이며, 소송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등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여전히 불안한 농협 전산망

12일 완전 마비 상태에 빠졌던 농협의 금융서비스가 속속 재개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신규 대출 신청에서부터 심사, 실행이나 대출 연기 등 대출의 전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여신 거래에 수반되는 데이터 규모가 크다 보니 아직까지 대부분의 지점에서 대출 거래가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15일 오전 8시 반경부터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와 체크카드 거래가 재개됐지만 시스템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고객들의 거래가 폭주하자 ‘버벅거림’이 반복됐다. 신용카드로 10여 차례 시도해야 간신히 한 번 예금을 인출하는 불안한 상황이 오전 내내 지속됐다.

14일부터 재개된 인터넷뱅킹도 오작동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일시적이지만 계좌 잔액이 0원으로 표시되는 등 거래기록이 사라지는 상황도 발생해 혼란을 낳았다. 트위터 ID가 ‘@sitehis’인 한 농협 고객은 “2011년 4월 15일 새벽. (인터넷뱅킹에서) 농협의 모든 계좌가 사라지고 0원이 되었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농협 측은 “고객들이 인터넷뱅킹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다운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일부 서비스를 제한하는 과정에서 생긴 해프닝일 뿐 실제 잔액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농협 보상방안 벌써부터 논란

농협은 15일 고객피해 보상의 일환으로 24일까지 농협 고객을 대상으로 e금융 수수료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면제 대상은 인터넷뱅킹 텔레뱅킹 모바일뱅킹 스마트폰뱅킹 등을 통한 타행 이체 수수료와 자동화기기(ATM) 출금 및 이체 거래 수수료다.

이어 17일에는 구체적인 피해 보상안을 내놓기로 했다. 농협에 따르면 전산장애사태로 돈을 제때 인출하지 못해 연체이자가 발생한 고객에게는 전산시스템이 복구되는 대로 즉시 보상에 들어가 늦어도 5월 중에는 모든 보상 절차를 끝내기로 했다. 농협 측은 “연체이자 발생 부분에 대해서는 농협 본부에서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따로 피해 신고를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보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연체이자 외에 발생한 직간접의 피해에 대한 보상이다. 농협은 피해 규모가 파악되는 대로 관련 부서 및 법률 검토를 거쳐 은행 측에 책임이 인정되는 부분은 보상하기로 했다. 그러나 피해보상 기준과 절차, 피해 입증방법 등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고객들은 구체적인 보상안이 나오더라도 보상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예컨대 돈을 제때 인출하지 못하거나 이체하지 못해 주식이나 아파트를 매매하지 못한 경우는 피해 입증이 쉽지 않다. 매매 행위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고객은 피해를 입증하는 별도 자료를 확보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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