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또 눈이 내렸다. 서울 여의도에서 벚꽃축제가 한창이던 19일, 강원 산간지역에서는 최대 27cm에 달하는 눈이 쏟아진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봄철 파종기에 폭설이 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폭설뿐 아니라 가뭄, 냉해, 우박, 폭우 등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있다. 농업전문가들은 ‘6월 가뭄-8월 이상고온-9월 폭우’의 삼재(三災)를 맞아 ‘배추대란’이 났던 지난해를 예로 들며 “올해 역시 기상이변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심각할 것 같다”고 우려하고 있다.
○ 성난 소처럼 널뛰는 한반도 날씨
최근 한반도의 하늘은 한마디로 ‘예측 불가’다. 농촌진흥청이 1970년대 이후 국내 날씨를 추적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날씨는 크게 △전체적으로 기온이 오르는 가운데 △여름철 폭우, 겨울철 가뭄이 갈수록 심해지고 △중간중간 급작스러운 냉해(冷害)가 닥치며 △일조량이 줄어들고 물이 말라 농사가 잘 안되는 상황으로 요약된다.
먼저 온도를 보면 1920년대 대비 2000년대 국내의 계절별 평균기온은 봄철 2도, 여름철 0.4도, 가을철 1.3도, 겨울철은 2.4도가 올랐다. 평균기온의 1도 상승은 수십, 수백 mm의 강수량 변화를 야기한다. 실제 우리나라의 강수량은 8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졌다. 여름철 연평균 강수량은 1920년대보다 163.9mm가 늘었고 봄, 가을 강수량도 각각 31.3mm, 41.0mm 늘어났다. 반면 겨울철 강수량은 37.4mm가 줄었다. 한마디로 여름은 홍수 때문에 난리가 나고, 겨울에는 가뭄으로 고생하게 된 것이다.
한편 봄∼가을의 강수량이 늘었다는 것은 흐린 하늘 때문에 일조시간이 줄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2009년 국내의 일조시간은 1973년보다 379시간이나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국립농업과학원 이덕배 기상팀장은 “2008년까지만 해도 기후 문제다 하면 온난화만 얘기했지만 이제는 일조량 부족과 저온 문제, 물 부족 문제가 같이 번갈아 나타나고 있다”며 “작물이 꽃과 잎을 무사히 다 피우고도 갑자기 눈을 맞아 죽는다든지 하는 것은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 “제사상에 사과 대신 키위 오를 판”
한반도의 하늘이 변하면서 30년 새 땅의 작물지도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한 예로 국내의 대표적 과일인 사과는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1980년대 대비 재배면적이 8761ha나 줄어들었다.
반면 제주와 남해 지방에서는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망고, 구아바, 파파야, 아보카도 등 아열대성 과일들이 도입되고 있다. 1980년대 제주에서만 재배되던 한라봉은 전북 김제까지 재배 가능지역이 북상했고, 경북 청도의 복숭아는 경기 파주까지, 경북 경산의 포도는 강원 영월까지 올라온 상태다. 멜론도 30년 전에는 전남 곡성 인근에서나 가능했지만 이제는 강원 양구까지 재배 지역이 확대됐다.
이 팀장은 “한때는 이러한 재배지 북상이 국내 농업에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괜찮을 줄 알았던 지역에 갑자기 냉해가 발생한다든지, 병충해가 들끓는 일이 잦아 오히려 ‘재해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 삼척, 태백 등 고랭지 지역은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에는 2∼3km에 달하는 고랭지 비탈 밭의 물줄기가 싹 말랐다. 이 팀장은 “물은 한 번 말라버리면 대체할 자원이 없다”며 “여름철 빗물을 제대로 저장해서 이용할 수 있는 전 국가적인 물 관리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