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건희 회장 “전세계에서 삼성 견제 커져…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2일 03시 00분


이건희 회장에게 “애플의 소송 어떻게 생각하나” 물었더니…

21일 오후 2시 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지하 1층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었다.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10여 명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첫 출근’을 했다. 지난해 12월 1일 여기서 열린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시상식에 참석하긴 했지만 42층 회장 집무실에서 업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2008년 삼성그룹이 서초사옥에 둥지를 틀기 전 14년 동안의 태평로사옥 시절에도 이 회장은 회사로 출근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이나 집무실 겸 외빈 접견실인 승지원에서 일했다. 그의 출근은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다시 서초사옥 지하 1층. 기자는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마주친 이 회장에게 다가가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앞으로 자주 출근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그럼요. 내(가 회장인) 회사인데 그래야죠”라며 밝게 웃었다. ‘내 회사’라고 말하는 그의 발음이 또박또박했다. 이때 경호진이 기자를 제지하려 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기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함께 걷자”고 했다.

이 회장은 올해 초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에서 “(경영을) 잘해보자”고 말한 뒤 수많은 임원 중 유독 한 여성 임원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한 적이 있다. ‘이 회장이 평소 여성인력을 존중하고 우대한다’고 전해들은 말들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다. 그렇게 최근 문을 연 삼성전자 디지털체험 매장 ‘딜라이트숍’까지 20여 m를 이 회장과 함께 걸었다.

“애플이 며칠 전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걸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 회장은 “기술은 앞서가는 쪽에서 주기도 하고, 따라가는 쪽에서 받기도 하는 겁니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럼 지금 삼성은 위기인가요?”라고 묻자 그는 돌연 발걸음을 멈추고 기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반문했다. “위기라고요?” 이때 이 회장 바로 곁에 있던 이재용 사장이 거들었다. “아, 회장님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늘 강조하시니 기자분이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그제야 이 회장은 “아, (위기는)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답했다.

딜라이트숍을 찾기 전 이 회장은 삼성 미래전략실 팀장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인용 미래전략실 부사장은 “자유롭게 업무를 보고하는 자리였고, 이 회장은 주로 들었다. 초과이익공유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얘기는 오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식사를 마친 이 회장은 서초사옥 1층 어린이집과 지하 딜라이트숍을 둘러봤다.

이 회장은 동아일보 기자와 헤어진 뒤 수십 명의 기자가 대기하던 삼성전자 로비의 포토라인 앞에 섰다. 그는 서초사옥을 처음 제대로 둘러본 소감으로 “빌딩이 참 좋다”고 했다. 이날 업무보고에서 인상적인 것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회장이 인상 깊은 얘기만 들으면 안 된다. 비슷한 얘기를 자주 반복해서 듣는 게 윗사람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

애플 소송 건에 대해서는 “애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우리와 관계없는, 전자회사가 아닌 회사까지도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겠지”라고 말했다. ‘삼성의 빠른 도약에 위협을 느낀 애플의 견제’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활동을 위해 영국 런던 출장을 나설 때 연분홍색 재킷을 입었던 이 회장은 이날 연한 비둘기색 재킷을 입었다. 갈수록 화사한 옷차림을 즐기는 이 회장은 기자들 앞에서 환한 표정으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 자주 출근할 계획이냐”는 한 여기자의 질문에 “가끔요. 기자님 얼굴 보고 싶으면 와야죠”라고 답했고, “왜 ‘오늘’ 출근하셨느냐”는 동아일보 기자의 질문에는 “오늘 별로 할 일이 없었거든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 회장은 오후 2시 57분 ‘마이바흐’ 승용차에 올라탔다. 5시간 동안의 ‘삼성 서초사옥 첫 출근’을 마무리하는 퇴근길이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FT “애플의 제소는 삼성에 대한 최고의 칭찬” ▼

“애플의 제소는 삼성전자에 대한 최고의 칭찬(flattery)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9일 ‘애플 대 삼성’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애플의 제소 목적은 태블릿PC 시장에서 최대 도전자인 삼성의 부상을 견제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재판 결과를 떠나 이번 제소로 ‘삼성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집요한 애플의 경쟁자’라는 함의가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애플사는 최근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과 갤럭시탭이 자사 제품을 모방했다며 미국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삼성이 주도하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전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이 지난해 23%에서 내년 말 절반에 이를 것이라는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전망을 인용하며 “애플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모든 가전제품을 통틀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양쪽의 ‘중간 시장’에 성공적으로 침투하고 있는 삼성의 검증된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아이폰 운영체제 iOS의 점유율은 19%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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