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순 주교황청 대사가 말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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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3일 03시 00분


“福者, 한국에 각별한 애정”

한홍순 대사
한홍순 대사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먼저 한국어로 또박또박 ‘찬미예수’라고 인사를 해주시는가 하면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죠.”

한홍순 주교황청 한국대사는 1일 가톨릭교회가 성인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추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전에 각별했던 한국 사랑을 하나씩 회고했다.

한 대사는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은 1984년 방한해 103인의 복자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시성(諡聖)식을 집전했는데 바티칸이 아닌 곳에서 시성식을 가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한 대사는 또 “복자에서 성인(聖人)으로 추대되려면 기적을 입증해야 하는데 103인은 모두 18세기 조선시대 천주교인이었고 이미 순교행위로 복자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다시 성인이 되기 위한 기적을 찾는 게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시 요한 바오로 2세가 “불치병을 낫게 하는 의학적인 것만 기적이 아니라 평신도가 세운 한국 천주교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성장의 길을 걸어온 것이야말로 기적”이라며 한국 천주교계의 간청을 받아줬다고 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특별한 배려가 아니었으면 한국은 성인을 갖기 어려웠다는 게 한 대사의 말이다.

어학에 일가견이 있었던 교황의 한국어 사랑도 유별났다. 첫 방한 때 한국어로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 구절을 첫 일성으로 내놓았던 교황은 이후에도 수시로 한국말을 구사했다고 한다. 한 대사가 과거 평신도 등의 신분으로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났을 때 “찬미예수”라고 우리말로 인사를 하면 그는 “찬미예수”라고 받아줬고 이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꼭 덧붙였다고 한다. 장익 전 춘천교구장이 유학 시절 교황의 한국어 교사였다.

1989년 한국을 두 번째로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자신이 시성
식을 주례했던 한국 성인들의 초상화에 성수를 뿌리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한국 순교자 성인 103위 시성식을 주례
했다. 동아일보DB
1989년 한국을 두 번째로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자신이 시성 식을 주례했던 한국 성인들의 초상화에 성수를 뿌리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한국 순교자 성인 103위 시성식을 주례 했다. 동아일보DB
한번은 한 대사가 각국 평신도와 함께 교황을 알현했을 때 대표로 나서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황은 웃으면서 “평신도 대표의 인사에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로 답했다는 것. 한 대사는 “조국 폴란드가 공산주의와 나치에 억압을 당하면서 큰 시련을 겪어서인지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의 굴곡 많은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마치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 같았다”며 “특히 분단의 역사에 대해 안타까워하셨다”고 전했다.

한편 요한 바오로 2세의 신학교 제자였고 비서로 40년을 봉직했던 폴란드 크라쿠프 대교구장 스타니스와프 지비시 추기경은 지난달 30일 밤 시복식 전야기도회에서 “교황께서 생전에 화를 내신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딱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인근에 가셨을 때 마피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셨고 다른 한 번은 이라크전쟁에 대해서 ‘전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반드시 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하실 때였다”고 회고했다.

바티칸시티=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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