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부아르가 내전으로 혼란한 와중에 임기를 끝내고 귀국한 현지 대사가 아프리카 코끼리의 멸종 위기를 우려해 국제적으로 거래가 금지된 상아를 한국에 들여오려다 적발됐다.
이 외교관이 귀국한 2월은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으로 교민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 교민 철수 필요성이 제기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던 시점이다. 특히 지난달 초에는 주코트디부아르 대사관 일부가 로켓포 공격으로 파손됐고 직원들이 7일간 총격전에 고립됐다가 유엔 평화유지군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되기도 했다.
2일 외교통상부와 인천세관에 따르면 세관은 지난달 28일 인천항에 도착한 P 전 코트디부아르 대사의 이삿짐 화물에서 수출입 금지 품목인 상아 16개가 포함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상아가 이사물품 신고 목록에 누락돼 있었고 수출 금지 물품이기 때문에 밀수죄에 해당한다”며 “외교관이 밀수 혐의로 조사를 받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세관 관계자는 “한국이 1993년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한 이후 상아 밀수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세관에 따르면 P 전 대사의 화물에 있던 상아 16개의 무게는 약 60kg이다. 상아 6개는 원형이고 10개는 여성의 몸 등이 음각된 조각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형의 상아 6개는 길이 60cm, 조각품 형태의 상아는 30∼50cm였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거래된 원형 상아의 kg당 가격은 1800달러(약 191만7000원)에 달한다. 60kg으로 환산하면 10만8000달러(약 1억1500만 원)다. 세관 관계자는 “상아가 국내에서 거래된 적이 거의 없고 국제사회에서 거래가 금지된 품목이라 가격을 추정하기 어려워 전문가들에게 의뢰했다”며 “가격이 파악돼야 처벌 수위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 金외교 격분 “검찰에 고발하라”… 본인은 “전혀 몰랐다” 주장 ▼
인천세관은 상아가 P 전 대사의 이삿짐에 실리는 것을 목격한 현지 교민이 지난달 8일 e메일로 제보한 사실을 바탕으로 P 전 대사의 물품이 도착하기를 기다린 것으로 알려졌다.
P 전 대사는 외교부 조사에서 “이삿짐에 상아가 포함된 사실을 몰랐다. (밀수) 의도가 있었으면 그렇게 허술하게 포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가 전한 P 전 대사의 해명에 따르면 대사 공관 이웃이 코트디부아르 내무장관이어서 친하게 지내다 장관의 부인이 P 전 대사 부인에게 상아를 선물해 창고에 보관해 왔다는 것이다. P 전 대사는 귀국 전 부인에게 짐 싸는 것을 맡겼는데 마침 부인이 말라리아에 걸려 관저에 고용된 현지인 3명에게 이삿짐 포장을 맡겼고 “상아를 넣지 말라”는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상아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를 맡은 외교부 당국자는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 상아 하나 정도야 선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러 개면 밀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인천세관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 3일 P 전 대사를 불러 수사할 계획이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2일 이 사건에 대해 실·국장회의에서 격노한 뒤 “뒤에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지 말고 검찰에 고발 의뢰해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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