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신문을 구독했다. 순창에서 자취를 하고 주말마다 집에 갈 차비도 없던 내가 돈이 어디서 나서 신문을 구독했는지 지금도 불가사의하다. 학교로 배달된 동아일보는 3학년 우리 반 모두가 돌려가면서 읽었다. 하교 때쯤이면 신문은 너덜너덜해졌다.
교사 일을 시작하면서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신문은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직장에서는 중앙지 1부와 지역지 1부를 보았다. 나는 신문에 난 연재소설, 문화예술소식은 물론 예술인의 인터뷰 기사를 오려 모았다. 이렇게 보관한 시, 소설, 문화예술 소식과 예술인의 인터뷰 사설 칼럼이 한 가마니나 됐다.
지금은 신문을 3부 본다. 중앙지 둘, 지방지 하나. 나는 잠을 일찍 잔다. 7시에서 8시 사이에 자고 오전 3시쯤 일어난다. 인터넷을 켜고 인터넷에 들어가 신문을 보기 시작한다. 헤드라인을 보고 칼럼과 특집을 살핀다. 고정 필자가 쓴 칼럼을 먼저 찾는다. 좋은 기획, 인터뷰, 칼럼이 있으면 클릭해서 딸에게 e메일로 보낸다. 그러다 보면 4시쯤 현관에 신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혼자 버스를 타고 강연을 갈 때는 버스터미널에서 반드시 신문 몇 부를 사기 때문에 좌판대 주인아저씨하고 친해졌다. 그는 이따금 내 기사를 보는지, 알은체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설과 칼럼을 읽고 나서 기사를 살핀다. 특히 세계 지도자의 연설문이나 회담 결과, 담화문 같은 글은 몇 번씩 읽는다. 세계적인 지도자의 연설문이나 국제적인 회담 후 합의문 같은 글은 혼자 쓴 글이 아니고 한 국가를 대표하는 글이라서 명문일 수밖에 없다.
나는 모든 신문의 섹션을 살핀다. 경제기사를 꼼꼼하게 챙긴다. 특히 세계적인 최고경영자(CEO)의 인터뷰,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 교수의 칼럼, 중국경제 기사는 정말 재미있게 읽는다. 섹션에 나오는 기사는 절대 빼놓지 않는다. 메모를 하며 읽기도 한다. 경제 기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를 확실하게 찾아 주고 일러주는 생각과 행동의 나침반이다.
신문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잘 정리해서 독자에게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내가 할 일이 분명해진다. 펄펄 살아 있는 확실한 현실, 그런 현실을 담은 신문읽기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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