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어머니가 살기 좋은 나라’ 48위… 韓美 두 지성에게 길을 묻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5일 03시 00분


싱 어 “인재육성?… 엄마에게 먼저 투자를”… 신경숙 “서로에게 모성 베푸는 사회 꿈꿔요”
■ 본보, e메일 인터뷰

《 '1위 노르웨이…48위 한국…164위 아프가니스탄.'
국제아동권리기관 '세이브더칠드런'이 어머니와 아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조사해 4일 발표한 '어머니보고서'에 나온 순위다. 한국은 지난해와 같은 48위였다. 국민소득 2만 달러, 경제규모가 세계 13위라는 국가 수준을 생각하면 아쉬운 순위다. 2000년부터 매년 발표된 이 순위는 여성과 아동의 보건·교육·경제 수준 지표 등을 종합해 매긴다.
'엄마를 부탁해'로 엄마 신드롬을 일으킨 작가 신경숙 씨(48)와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라는 저서에서 기부의 힘을 설파한 피터 싱어 프린스턴대 교수(55)는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할까. 》

싱어 교수는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뽑혔던 실천윤리학자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어머니 보고서' 조사와 분석에도 직접 참여했다.
두 사람이 지난달 28일부터 일주일간 이메일 대담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먼저 보고서의 제목이 '어머니보고서'라는 데 주목하면서, "어떤 나라든 어머니가 살기 좋은 곳이 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신경숙 작가(이하 신)=가정은 사회의 최소 단위이고 어머니는 가정에서 가족 모두와 가장 깊은 정서적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다. 어머니가 행복하다면 어머니와 연결된 가족 모두가 좋아진다. 여성과 남성, 아버지와 어머니는 따로따로가 아니다. 어머니가 살기 좋은 나라라면 저절로 아버지도 살기 좋은 나라 아니겠는가.

▽피터 싱어 교수(이하 싱어)=어느 나라, 어느 문화든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훨씬 많이 아이들을 돌본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먼저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어머니의 역할은 시작된다. 태어난 지 6주 안에 엄마를 잃은 아이들은 두 살이 되기 전에 죽을 확률이 엄마가 있는 아이들에 비해 3~10배나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어머니의 건강은 아이의 신장, 지능, 성장한 뒤의 경제적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산모 건강을 위해 기본적인 보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이유다.

▽신=태어난 지 6주 됐다면 태열도 가시기 전일 텐데, 모태가 사망하면 아이가 온전하겠는가. 생명을 잉태한 산모 자신이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알아야 하고 사회도 배려해야 한다. 섬세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실제로 저개발국일수록 어머니의 삶은 팍팍하다. 매년 산모 50여만 명이 출산 도중에 또는 출산 전후에 사망하는데 저개발국 산모가 99%를 차지한다. 기본 의약품, 의료장비,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면 피할 수 있는 죽음이다.

▽싱어=물론 어떤 생명이 더 가치 있는지,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는지 말하긴 힘들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선진국에서 1명의 아이를 구하는 돈으로 저개발국에서 2명의 아이를 구할 수 있는데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등의 중산층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경우가 많다. 집을 넓히거나 꾸미는 일 같은.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을 소비하고 있는지 반문해 봐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엄마나 아이를 구해낼 수 있는 자원을 다른 데 쓴다는 뜻이다.

▽신=한국은 6·25 전쟁을 겪으며 기부를 받던 처지였다가 이젠 가난한 나라를 도울 수 있게 됐다.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가 된 것을 감사하면서 국내든, 해외든 아이들을 돕기 위해 나서야 할 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머니보고서'의 한국 순위는 변동이 없다. 신 씨는 어머니의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신
=아이를 기르고, 가사를 돌보며,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한국 어머니의 몫이다. 다른 사람들은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어머니들의 어깨가 너무 무겁다. 한 여성이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가족 구성원과 사회가 어머니의 역할을 나눠야 한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한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엄마가 되어야 한다. 사회는 개인에게, 개인이 사회에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싱어=어머니는 자식에게 희생한다. 특히 한국의 엄마들은 자녀 교육에 많은 헌신을 한다고 들었는데 좋은 투자라고 본다. 다만 지구 반대편에 깨끗한 물조차 마시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지나친 사치를 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싱어 교수는 '1% 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신씨도 인세의 1%를 기부하고 있다. 10년 전 장편소설 '바이올렛'을 발표한 뒤부터다. "인세 기부를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신 씨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신생아 모자뜨기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싱어=5세 미만 아이들이 매일 2만2000명씩 죽는다고 한다. 깨끗한 식수와 기본적인 보건 서비스만 있으면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아이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능력 있는 단체들이 일을 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 수입의 1%를 기부하는 것부터 시작해 점차 늘려나갈 것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

▽신
=뜨개질 솜씨는 없었지만 모자를 뜨는 동안 모자를 쓸 미지의 아이를 상상하는 일 자체가 위험에 처한 어린 생명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마음들이 생겨났다면 후원금보다 값진 일일수도 있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최근 미국에서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역시 '엄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인류에게 공통적인 정서인 듯하다. 신 씨와 싱어 교수도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어머니라고 고백했다.

▽싱어=모든 사람들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는다. 나의 어머니도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던 어머니로 인해 지금의 내가 가능했다.

▽신=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가난을 느낄 수 없게 사랑을 주셨다.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토닥여주었다. 칭찬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어린 나는 내가 진짜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또 어머니가 늘 무엇을 가꾸고 기르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자랐다. 음식을 넘치게 해서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일들이 자연스러웠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어머니의 마음이 나에겐 사랑의 원형 같은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내가 인간에 대해 가진 신뢰의 첫출발이었다고 생각한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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