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다. 김재평 씨 제공
2009년 12월 김무성(가명·9) 군은 강원 삼척시 하장면 두타산 해발 800m에 자리 잡은 ‘꿈을 이루는 지역아동센터’에 처음 갔다. 밥을 먹는 동안 다른 밥그릇 하나를 꼭 안는 버릇을 가진 아이였다. 김재평 센터장(57·목사)이 “밥솥의 밥을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말해도 김 군은 그릇을 놓지 않았다. 부모가 이혼한 뒤 누나와 함께 일흔이 넘은 시골 할머니댁에 맡겨졌던 김 군은 늘 배가 고팠다. 반년이 지나서야 밥그릇을 하나 더 챙기는 버릇을 고쳤다. 그리고 웃기 시작했다.
‘꿈을 이루는 지역아동센터’는 김 군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 29명이 모인 곳. 그중 8명은 조손가족이거나 한부모가정에서 자랐다. 2007년 8월 이 지역 교회 목사로 온 김 센터장은 “눈은 초롱초롱하지만 정에 굶주린 아이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사택에 불러들여 가르쳤다”고 전했다.
센터가 문을 열자 아무런 문화적 교육적 혜택이 없는 첩첩산중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울리고 알파벳 외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곳의 사연은 올해 한국YWCA연합회와 한국YMCA전국연맹이 전국 지역아동센터 개보수 사업을 시작하면서 모범 사례로 알려졌다.
부모의 무관심이나 폭력 때문에 마음의 병을 하나씩 앓고 있는 아이들. 잘 먹지 못해 또래보다 성장이 느린 아이도 있었다. 김 센터장은 “아빠 엄마가 있어도 종일 농사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 센터가 문을 닫는 오후 10시에도 아이들은 ‘집에 가기 싫다’고 한다”고 전했다.
센터가 성장한 과정은 ‘기적’ 같았다. 처음에는 인근 교회에서 쌀을 모아 아이들 밥도 해주고 떡볶이도 만들어줬다. 2008년 센터를 새로 짓는 데 들어간 종잣돈 300만 원은 옆동네 탄광촌 할머니들이 1t 트럭 6대 분량의 폐지를 모아 마련했다. 지역아동센터로 지정된 뒤부터 도서관 음악실도 갖추고, 아동지도교사 인건비도 지원받고 있다.
김 센터장이 센터가 완공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벽에 가로 5m, 세로 3m의 세계지도를 거는 일이었다. 교통이 불편해 시내로 나갈 일도 드물지만 넓은 세상을 보며 꿈을 가지라는 뜻이었다.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다문화가정을 이룬 필리핀 여성 쿠빌 베니사아 씨(44)가 선생님이다. 지난해 1월 지역아동센터 연합회가 개최한 영어말하기 대회에서 홍현정 양(13)이 우승을 하기도 했다.
무청을 팔아 바이올린 하나, 고추장아찌를 팔아 클라리넷 하나…. 악기도 이렇게 마련했다. 연주법은 강릉대나 관동대 학생들이 시골길을 1시간 이상 달려와 가르쳤다. 지난해 성탄절에는 연주회도 열었다. 악기 연주를 처음 듣는 부모들은 눈가를 훔쳤다.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이 아이들의 꿈이다. 김 센터장은 “음악의 치유효과 덕에 아이들이 자신감이 생기고 정서적으로 안정이 됐다”고 말했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 센터장은 목소리가 금방 젖어든다.
“이번 스승의 날에 편지를 받았어요. ‘목사님 딸이 되고 싶어요.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여기 살다 엄마가 데려갔는데 거의 버림받다시피 해서 다시 돌아온 아이였죠. 아이고, 이 아이들을 누구에게 다시 맡깁니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