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를 묻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병사 스티브 하우스 씨(54)는 21일(현지 시간) 기지 안에 매립한 고엽제가 최소한 드럼통(55갤런·205L들이) 500개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는 당초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소재 민영방송 KPHO-TV가 보도한 고엽제 매립 물량인 드럼통 250개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거주하는 하우스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고엽제 드럼통 250개는 캠프 캐럴 창고에 있던 것이었으며, (그것과 별개로) 1978년 5월부터 이듬해 1월 말까지 15∼20차례 외부에서 트럭이 기지 안으로 고엽제를 운송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외부에서 기지로 들어온 드럼통은 비무장지대(DMZ)나 한반도 내 해군기지, 그리고 미 공군기지에서 반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트럭 운전병이 미 공군복을 입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 한 트럭에 드럼통 48개를 실을 수 있는데 트럭의 크기가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트럭이 20차례 운송할 분량이면 최대 드럼통 1000개까지도 가능하지만 1000개까지는 안 될 것 같다”고 설 명했다. 그는 “고엽제 매립은 1979년 1월 말까지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하우스 씨는 “그동안 미 국방부와 국가보훈부 등에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묻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한국인들에게도 알려줘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모두 묵살당했다”며 “이들은 내가 앓고 있는 당뇨병과 간 질환 등이 고엽제와 상관없는 것이라며 보상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은 내가 언제 죽을지 몰라 죽기 전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250드럼 외에 9개월간 고엽제 트럭 15~20대 더 들어와” ▼
1978년 경북 칠곡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병사 스티브 하우스 씨(54). KBS TV화면 촬영 하우스 씨는 “그동안 이 사실을 알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모두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심지어 나를 거짓말쟁이로 취급해 언론을 통해 알리게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중증 지방간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하우스 씨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6시간이 걸리는 수술 도중 사망할 수 있다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병이 더 악화될 때까지 수술 시점을 늦추고 있다. 하우스 씨와의 인터뷰는 20일부터 21일까지 3차례에 걸쳐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고엽제를 기지 안에 매립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 부대의 리더였다. 미군 중위였다. 명령계통을 따랐을 뿐이다.”
―매립 당시 어떤 명령을 받았나.
“드럼통을 폐기해야 한다면서 구덩이를 파라고 해서 팠다. 무엇을 묻으라는 건지 전혀 몰랐다.”
―고엽제라는 것을 몰랐나.
“드럼통을 운반하면서 알았다. 55갤런짜리 드럼통에 베트남 지역(Province of Vietnam)과 콤파운드 오렌지(고엽제)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1965년, 1966년 연도도 적혀 있었다.”
―매립은 몇 번 했나.
“내 기억엔 15∼20차례다. 1978년 4월 초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어졌다.”
―고엽제 분량은 얼마나 됐나.
“맨 처음 캠프 캐럴 안 창고에서 운반한 것이 드럼통 250개이고 이후에 트럭이 15∼20차례 들어왔다. 트럭마다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드럼통 500개 이상이다.”
―매립할 때 주의하라는 얘기가 있었나.
“전혀 경고가 없었다. 이 물질이 몸에 묻을 경우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얘기도 하지 않았다. 가스 마스크조차도 주지 않았다. 아무도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말하지 않았다. 당시 같이 일한 병사 리처드 크래머(일리노이 주 거주)는 운동화를 신고 작업하다가 발이 마비됐다.”
―고엽제라는 것을 입증할 자료가 있나.
“내가 사진을 찍었다.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내 동료 로버트 트래비스(웨스트버지니아 주 거주)도 당시 찍은 사진을 갖고 있다.”
―얼마나 많은 군인이 매립에 가담했나.
“트럭 운전사 2명, 중장비 기사 4명 등 모두 6명이 했다. 나중에 외부에서 드럼통이 들어왔을 때는 서너 명이 작업을 했다.”
―어디에 매립했는지 기억하나.
“기지 뒤쪽 헬기장 근처다. 구글 어스로 보면 헬기장 부근에 병원이 2개 보인다. 구글 어스를 보고 KPHO-TV에 정확한 지점을 말해줬다.”
―작업할 때 주변에 한국 병사가 있었나.
“카투사는 작업 현장에 없었다. 모두 주한미군이 작업했다. 한국 병사들은 무엇을 묻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왜 이제야 이 사실을 폭로하나.
“간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져 이제 수술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의사가 수술 도중 죽을 수도 있다고 해서 미루고 있다. 의사들은 내가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고엽제를 매립한 뒤 체중이 늘기 시작하고 마른기침이 이어졌다. 5년 전에 미국 보훈부에 나의 심각한 증상을 알렸지만 이들은 고엽제와 상관이 없다고 부인했다. 올해 보훈병원의 한 의사로부터 당뇨병과 신경장애, 간 질환 등이 고엽제에 노출됐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죽으면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를 것 같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 언론과 접촉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금 어떤 병을 앓고 있나.
“당뇨병과 피부질환, 중증 지방간 등의 합병증을 앓고 있다.”
―미 국방부에 진정하지 않았나.
“지금도 하고 있지만 나의 어떤 질병도 고엽제와 상관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당뇨병과 간 질환이 고엽제와 상관없다고 일관되게 부인한다.”
―또 누구에게 호소했나.
“오래전부터 미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리조나가 지역구인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에게도 2년 전부터 5, 6차례 편지를 썼지만 대답이 없다. 주 상원의원과 주 정부 당국자들에게도 얘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를 믿지 않았다.”
―기지 인근에 사는 한국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미국 방송에서 주민들이 항의하는 시위 장면을 지켜봤다. 이런 일이 일어나 아주 가슴 아프고 슬프다. 친절한 한국인에게 내가 한 일에 대해 사과한다. 미국 정부도 사과해야 한다.”
―미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구덩이를 파다가 피해를 본 병사들을 보호하고 인근 주민들의 질병을 조사하고 건강 문제도 책임져야 한다.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당시 병사들은 보상과 함께 치료를 원한다.”
―누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나.
“고엽제를 묻으라고 지시한 사람은 누구든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그 명령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얼마나 높은 지휘층에서 시작됐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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