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다가 우리 군에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들이 23일 부산지방법원 301호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해적들은 5일 동안 국민참여재판 형식으로 재판을 받은 뒤 27일 오후 1심 선고를 받게 된다. 해적인 무함마드 아라이(23) 아울 브랄라트(19) 압둘라 알리(24) 압디카다르 이만 알리(21)가 교도관을 사이에 두고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왼쪽부터). 재판부는 해적이 보복할 것을 우려해 교도관의 얼굴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해 달라고 주문했다. 아울 브랄라트는 미성년자여서 같은 처리를 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23일 부산지법 301호 대법정. 국내 사법사상 첫 해적재판이 열린 이곳에 국내외 이목이 집중됐다.
부산지법 형사합의5부(김진석 부장판사)는 이날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다가 생포된 해적 5명 가운데 국민참여재판을 거부한 압둘라 후세인 마하무드(21)를 제외한 4명에 대해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기자단에게 허용했다. 해적들은 왼쪽 가슴에 노란색 수용번호가 적힌 연푸른 수의를 입은 채 긴장한 모습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그러나 얼굴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보다 건강해 보였고 살이 찐 모습이었다.
이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시간은 한국인에 비해 11배 가까이 길었다. 보통 한국인이라면 20초면 충분하지만 한국어→영어→소말리아어로 2단계를 거치면서 이름 나이 국적 출신지 등 해적 4명의 인정신문을 하는 데만 15분가량 걸렸다. 압디카다르 이만 알리(21)의 이름 확인 과정에서는 재판장과 통역, 피고인 사이에 핑퐁식 질문이 왔다 갔다 하면서 알파벳 ‘Abdikhadar Iman Ali’로 최종 이름을 확인하는 데만 5분이 소요됐다. 재판장은 법정에 걸린 시계를 자주 쳐다보면서 난감해했다. 재판장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통역사 2명이 영어와 소말리아어를 동시통역하도록 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이 대형 스크린에 사진과 함께 “타당 탕 탕” 하는 총소리를 증거로 제시하자 해적 4명이 일순간 긴장하기도 했다.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에게 총을 쏜 혐의로 기소된 무함마드 아라이(23)는 자리에서 머리를 돌려 스크린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는 검찰진술에 대한 통역이 시작되자 “목소리를 크게 해 달라”는 제스처로 손바닥을 위로 들어 올리기도 했다. 변호인 진술의견에 이의가 없는지 묻자 “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다시 설명해 달라” 등 8차례나 적극적인 의견을 내놓으며 다른 해적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08년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길어야 이틀 만에 끝났지만 이번에는 5일간 열린다. 배심원도 예비 3명을 포함해 사상 최다인 12명으로 구성됐다. 여자가 7명, 남자가 5명이다. 연령대도 20∼70대까지 골고루 분포된 것으로 보였다.
내외신의 관심도 뜨거웠다. 일본 아사히(朝日), 요미우리(讀賣) 신문 등이 방청석에서 직접 취재했다.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해리 포셋 특파원(36)과 카메라 기자, PD 등 3명을 파견해 취재경쟁을 벌였다.
소말리아 해적 재판을 구경하려는 시민들이 방청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부산지법은 해적재판을 직접 보려는 일반인에게 방청권 40장을 선착순으로 배부했다. 기자들에게 배부된 자리도 40석이었다. 이 중 외국인 기자는 5명이었다. 검찰과 변호인은 재판 첫날부터 날선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해적들의 8가지 범죄행위를 열거했지만 변호인들은 선원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웠다는 점과 아라이가 석 선장에게 총을 난사해 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는 완강히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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