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A 씨는 지난해 지체장애 3급인 어머니와 함께 승용차를 구입했기 때문에 취득세 36만 원을 면제받았다. 지방 발령을 받아 어머니와 함께 주소를 옮겼지만 인사발령이 취소돼 한 달여 만에 다시 예전 주민등록지로 돌아와야 했다. 문제는 자신의 주소만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어머니는 빠뜨리는 바람에 가구 분리로 인정돼 면제됐던 취득세가 다시 부과된 것. 소송을 하자니 배보다 배꼽이 크고 그냥 있으려니 억울했던 그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개 세무법정’의 문을 두드렸다. ○ 현직 판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
23일 오후 2시 서울시청 대회의실에는 위원장인 현직 판사 좌우로 8명의 회계사와 변호사, 감정평가사 등이 자리를 잡았다. 법정에서처럼 위원장이 의사봉을 세 번 내리치며 세무법정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위원장이 봤을 때 오른쪽에는 신청인과 신청인을 도와줄 ‘특별세무 민원 담당관’이 자리 잡았다. 마치 변호사처럼 민원인이 주장하는 법적 근거를 찾아주고 민원인의 말문이 막힐 때는 대신 나서 위원들의 질문에 답했다. 부과처분 기관인 금천구 공무원은 위원장이 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에 앉았다. 양측이 각자의 근거를 제시하자 위원들은 송곳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런 규정을 미리 알고 있었느냐’ ‘어머니를 뺀 것은 무슨 이유냐’ ‘구청에서는 어떤 규정을 적용했는가’ 등 10여 개의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과 답변이 끝나자 위원 9명은 30여 분간 별도 장소에서 회의를 거친 뒤 A 씨에게 부과한 취득세를 취소하라는 판단을 내렸다. “분위기가 법정과 같아 무척 떨렸다”는 A 씨는 자신의 손이 올라가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A 씨 뒤를 이어 공개법정을 찾아온 다른 두 명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 유엔도 인정한 시민 위주 행정
서울시는 2008년 4월 이 제도를 시작한 이후 194건을 ‘공개 세무법정’에서 다뤘다. 이 중 35%인 69건은 시민의 주장이 인정돼 잘못 부과된 세금 24억 원이 환급됐다. 공개세무법정이 도입되기 전 이의신청 제도가 운영됐을 때는 평균 18% 정도만 시민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이강석 서울시 재무국장은 “다소 부담스럽겠지만 담당 공무원이 직접 출석해야 하다 보니 평소 업무처리에 신중해지는 효과도 있다”며 “시민들이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는 세무행정을 위한 제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방청석에는 실제 사례를 확인하기 위한 일선 구청 세무 담당 공무원 30여 명이 위원들의 지적사항을 적어가며 진지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이런 효과를 인정한 유엔경제사회처는 지난달 이 프로그램에 대해 공공행정상 우수상을 주기도 했다. 유엔은 2003년 6월 23일을 ‘유엔 공공행정의 날’로 지정한 이후 매년 전 세계 공공기관이 출품한 행정서비스를 평가해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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