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 거장 초청 낭독회에 참석차 서울에 온 작가 르 클레지오 씨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 북촌 한옥마을 내 동양문화박물관에 들렀다. 그는 “현대적 감각과 전통문화 가 어우러진 것이 서울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좁은 골목길, 한옥, 꼬인 전선줄, 하늘을 가득 채운 인왕산….”
그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땅부터 하늘까지 눈으로 훑었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 북촌 한옥마을 ‘동양문화박물관’ 앞 풍경을 두고 그는 천천히 말했다. “이런 맛에 한국 온다”라고.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문학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씨(71)는 이날도 서울을 거닐었다. 그가 말하는 ‘맛’이란 현대적 감각(곧게 뻗은 건물)과 전통(한옥마을) 문화의 조화를 뜻한다. 2001년 5월 이맘때 처음 서울을 찾은 그는 10년째 한국과 서울 예찬론을 펼치고 있다. ‘지한파(知韓派)’인 그가 말하는 서울은 어떤 도시일까. 티셔츠에 샌들, 간편한 차림으로 북촌 한옥마을 산책을 나선 그에게 얘기를 들어봤다.
○ 고즈넉한 서울 골목길
“처음에는 명동이나 인사동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갔었죠. 하지만 지금은 동네 후미진 골목길, 전깃줄 위에 앉은 참새, 잘 알려지지 않은 냉면, 해장국 식당을 찾아가는 것이 더 재미있어요. 돌아다닐 때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제 맛이죠.”
르 클레지오 씨는 1년에 최소 한두 차례 한국에 와 서울 거리를 걷는다. 이번에도 25일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열린 서울시 주최 세계 문학 거장 초청 낭독회 ‘세계 작가 연희 하다’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행사는 단 하루지만 그는 서울과 제주도 등을 여행할 계획으로 다음 달 중순까지 머물기로 했다. 다음 달 7일에는 제주도에서 ‘제주 명예 시민증’을 받는다.
그는 최근 박찬욱 영화감독을 만났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박 감독이 ‘서울은 변화 속도가 매우 빨라 조금만 떠나 있어도 어색하다’라는 말을 했다”며 “그것이 느릿한 도시인 파리가 갖지 못한 서울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르 클레지오 씨가 좋아하는 것은 서울의 자연 풍경이었다. 한옥마을을 도는 내내 그는 “이 한적한 길거리를 그냥 필름에 담아 영화를 만들어도 되겠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에 오면 들르는 곳을 묻자 그는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 가서 동식물을 보고 경복궁, 한옥마을에 가서 옛 정취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 대한 그의 애정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소설가 이승우 씨의 작품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고 책 속에 나오는 ‘연꽃 시장’이라는 장소를 찾기 위해 무작정 서울을 걸었다. “청계천쯤인 것 같았는데 확실히 못 찾았다”며 웃는 그에게 길거리 행인들 표정, 한국어 간판 등은 서양에서 느끼지 못한 문학적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 “새 지저귀는 연희동에서 소설을 쓰고 싶다”
1940년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태어난 르 클레지오 씨는 1963년 데뷔작 ‘조서’로 프랑스 문학상인 르노도상을 받았다. ‘사막’을 비롯해 ‘홍수’ ‘성스러운 세 도시’ ‘혁명’ 등의 대표작을 발표했고 2008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프랑스 출신임에도 비서구적이고 친자연적인 작품 세계를 보인 그는 2001년 전남 화순군 운주사를 둘러보고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지한파가 됐다. 2008년 발표한 ‘허기의 간주곡’은 그가 서울에 있을 때 집필한 대표 작품이다. 올가을에 발표할 옴니버스 단편집 ‘발바닥 이야기’에도 서울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과 지하철 속 풍경 등을 녹였다.
서울에 자주 오고 한국 문학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비단 르 클레지오 씨뿐만은 아니다. 최근 파리에서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 콘서트를 보기 위해 10대 프랑스 학생들이 몰리는가 하면 파리 길거리에 한식당들이 생겨났다. 그는 “유럽 등 서양에서 아시아 문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일본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한국 문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을 묻자 그는 “새가 지저귀는 연희동에서 다음 작품을 쓰는 게 꿈”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 그는 교통과 도시 공해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