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50명의 시선은 모두 동화작가 고정욱 씨(51)를 향했다. 쉬운 듯하면서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학생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고 씨는 조용하게 ‘답’을 얘기했다.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평범한 것을 할 수 없다는 것. 고로 여러분은 행복하다는 것!”
고 씨는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동화작가로 성공했다. 그는 얘기를 이어갔다.
“어머니 등에 업혀 등교를 해야 했지.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는 걸까’ 자책도 했어. 하지만 책만 펴면 바다부터 우주, 과거. 미래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지….”
고 씨의 진솔한 이야기에 학생들은 펜과 노트를 꺼내 그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적었다. 이곳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중학교 강당에서 열린 ‘학교에서 만나는 독서의 즐거움’ 현장이다.
○ “얘들아 책 읽자!” 학교로 찾아온 작가
이 프로그램은 마포구가 4월부터 운영 중인 독서프로그램. 과거 ‘독서는 중요하다’ 식의 주입식 내용이나 딱딱한 강의에서 탈피해 작가 시인 등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주내용이다. 지난해 하반기(7∼12월)에 9개교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벌인 데 이어 올해 본격적으로 13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사업을 시작했다. 대상 학교도 17개교로 늘렸다. 시인 정호승 씨, 소설가 이순원 씨 등 유명 문학가 10여 명도 섭외했다. 이인숙 마포구 평생교육팀장은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고 책 읽기 교육의 최전방 장소가 학교라서 ‘학교로 찾아가는’ 형식을 띠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고 씨는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등 초중학교 필독 도서를 쓴 터라 학생들에게는 이미 유명 인사다. 말이 독서강연회지 분위기는 ‘팬 미팅’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책 읽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책을 읽으며 나의 꿈을 키웠다” 식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자신의 인생 이야기에 담아 전했다. 강연을 마친 후 기자와 만난 고 씨는 “서점에서 하는 ‘저자와의 대화’보다 더 진솔한 것 같다”며 “학생과 학부모를 현장에서 만나는 것만으로도 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 작가와 여행까지… 만남은 곧 독서
최근 서울시를 포함해 독서를 강조하는 자치구들은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미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독서토론회 같은 전통적인 프로그램도 있지만 유명 작가와의 ‘면 대 면’식 만남이나 도서관에서 주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독서 이벤트 행사 등을 통해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 대종을 이룬다.
서울문화재단은 작가 김남중 씨의 장편동화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읽은 독자들과 연극 공연을 펼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초등학교 4학년부터 성인까지 연극에 참여할 시민 배우 30여 명을 공개 오디션 형식으로 뽑았다. 지난달 28일에는 작가 윤구병 씨의 동화 ‘당산 할매와 나’ 독자 40명과 함께 동화 속 배경인 전북 부안의 ‘변산공동체’ 마을을 찾는 체험 프로그램도 열렸다. 송파구는 그림책 ‘숲 속 재봉사’를 쓴 작가 최향랑 씨와 함께 책 속 주인공(재봉사)처럼 꽃잎과 말린 나뭇잎 등 자연재료를 가지고 직접 옷을 만드는 행사를 열었다. 관악구는 최근 관악산 도시자연공원 입구에 시(詩)도서관을 만들어 시인들을 초청해 ‘시 축제’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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