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농구 등도 승부조작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본보가 불법 스포츠 베팅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본 결과 야구 농구는 축구처럼 승패 조작은 어렵지만 승패와는 다른 ‘스페셜 베팅’이란 게 있어 부분적인 승부조작을 할 개연성이 아주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 대형 포털사이트의 프로야구 문자 중계. 이곳의 ‘응원 한마디’ 코너에는 매 경기 팀별로 1만∼2만 건의 메시지가 올라온다. 불법 사이트를 안내하는 문구도 쉽게 볼 수 있다.
그중 한 곳을 2일 접속해 봤다. 그럴듯하게 꾸민 초기화면에 ‘오늘의 경기’가 자리 잡고 있다. 이날 열릴 프로야구 4경기도 보인다. 팀별로 고정 배당률(프로토 방식)이 제시돼 있다. 합법인 스포츠토토(www.betman.co.kr) 사이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스포츠토토와 달리 이 사이트는 회원 가입을 하지 않으면 더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회원으로 가입했다. 절차는 간단했다. 합법 사이트와 달리 실명 인증을 요구하지 않아 한 명이 가명으로 여러 개의 ID를 만들 수 있다.
‘머니 충전’ 절차도 합법 사이트와는 달랐다. 전화나 휴대전화 등 합법 통신망을 이용한 소액 결제가 불가능하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이트에서 안내한 특정 계좌에 돈을 이체하면 이를 확인한 뒤 충전을 해 준다. 5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자주 하는 질문(FAQ)’ ‘1:1 문의’ 등 코너가 있지만 문의할 수 있는 전화번호는 찾아 볼 수 없다.
경기당 베팅 금액도 다르다. 스포츠토토가 최소 1000원부터 최대 10만 원까지 베팅할 수 있는 데 비해 최소 금액은 5000원이었고 최대 100만 원까지 걸 수 있다. 여러 개의 ID를 만들 수 있어 사실상 무제한 베팅인 셈이다. ‘충전 금액만큼 베팅 내역이 없을 경우 환전 불가능’이라는 안내문도 있었다. 섣불리 가입하고 입금했다간 아예 본전도 못 찾는다.
3개의 메인 메뉴 가운데 ‘승무패’는 합법 사이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템이다. 초기 화면에 있는 경기들이 이 방식이다. 전력이 약한 팀에는 높은 배당률이, 강한 팀에는 낮은 배당률이 걸려 있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또 다른 메뉴 ‘핸디캡’은 전력이 우수한 팀에 불리한 조건을 줘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승무패’를 변형한 방식이다. 둘 모두 경기의 최종 결과를 맞혀야 돈을 딸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합법 사이트 대신 이곳을 찾을 이유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사이트는 입금 액수에 따라 보너스 포인트를 지급한다. 100만 원을 입금하면 110만 원을 충전해 주기 때문에 구미가 당길 만하다.
눈에 띄는 것은 ‘스페셜경기’라는 메뉴다. 프로야구의 경우 모든 경기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1회초에 투수가 상대 1번 타자에게 던지는 첫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를 예상하는 게임이 있다(그래픽 참조). 투수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프로야구는 전날 다음 경기 선발 투수를 예고한다. 가정이지만, 어떤 투수가 이런 사이트와 연계돼 있다면 초구를 볼로 빼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선두 타자의 볼넷 출루 여부를 맞히는 ‘첫 볼넷’ 아이템도 마찬가지다.
프로농구의 경우 첫 자유투를 얻어 성공시키는 팀을 맞히는 항목도 있다. 적당한 시기에 고의로 파울을 하면 자유투를 내 줄 수 있는 게 농구다. 이런 아이템을 취급하는 불법 사이트는 수십 개에서 수백 개가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승패를 뒤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역시 넓게 보면 승부 조작이다.
국민체육진흥법은 불법 베팅 사이트 운영자를 3년 이하의 징역,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트 운영자를 찾기 어려운 데다 실제 구속 및 징역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적다. 운영자들은 대개 다수의 도메인 주소를 이용해 운영하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
프로야구 모 구단 관계자는 “그런 사이트가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조만간 관할 경찰서에 요청해 선수들을 상대로 승부조작 및 도박 등 불법 사이트에 대한 교육을 할 예정이다. 선수들이 베팅 자체가 범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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