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민원인 불만, 겪어보니 알겠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8일 03시 00분


양천구 ‘미스터리 평가단’

‘민원인’으로 가장해 다른 구에 들러 친절도를 비교 평가하는 미스터리 평가단 제도가 최근 서울시와 시내 자치구에 도입됐다. 1일 오후 양천구 직원들이 A구청 민원여권과를 방문해 A구청 직원들의 친절도를 평가했다.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이후 양천구 직원들이 미스터리 평가단을 재현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양천구 제공
‘민원인’으로 가장해 다른 구에 들러 친절도를 비교 평가하는 미스터리 평가단 제도가 최근 서울시와 시내 자치구에 도입됐다. 1일 오후 양천구 직원들이 A구청 민원여권과를 방문해 A구청 직원들의 친절도를 평가했다.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이후 양천구 직원들이 미스터리 평가단을 재현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양천구 제공
1일 오후 서울 A구청 민원여권과. 커다란 가방을 멘 여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오셨어요?”(구청 안내 직원)

“미용사 면허 좀 신청하러….”

안내를 받고 담당 직원 앞에 선 여성. 잠시 머뭇거리더니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질문 폭탄’을 던졌다. “미용사 서류 신청은 어떻게 하나” “건강증명서는 어디서 발급받는지” “반명함판 사진 2장의 크기가 달라도 되나” 등 5분도 안 돼 10개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 무표정하던 해당 직원의 표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굳어갔다. “미용실 사업자 등록을 위해 세무서를 들러야 한다”는 직원의 말이 이어지자 여성은 “대신 전화 좀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팽팽한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직원은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직접 하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 상황 종료. 구청 현관을 빠져나온 여성은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꽤 친절한 편이다”라며 직원을 평가했다. 그의 정체를 묻자 그는 “양천구 민원여권과 직원. 그리고 미스터리 평가단”이라고 대답했다.

○“스파이가 아닙니다”


그는 양천구가 지난달부터 마련한 ‘미스터리 평가단’ 제도 참가 직원 중 한 명이다. 미스터리 평가단은 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고객 접점에서 직원들의 친절도를 조사하기 위해 자주 하는 ‘미스터리 쇼퍼’ 제도를 본떠 만든 것이다. 손님을 가장한 평가단이 매장 서비스, 제품 관리 현황 등을 평가하는 게 미스터리 쇼퍼의 주 내용. 양천구의 경우 직원들을 다른 구로 보내 비교 평가하는 방식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하겠다는 것이다.

평가단은 일반 시민처럼 보이기 위해 복장부터 말투까지 짜인 ‘시나리오’대로 해야 한다. 이날 미용사 면허 신청을 하러 A구청에 간 직원은 미용사들이 애용하는 ‘빅 백’(큰 가방)을 들고 머리는 멋스럽게 빗어 넘기는 등 헤어 디자이너처럼 보이기 위해 준비했다. 점검 도중 평가표를 보거나 작성하는 것은 금물이다. 질문도 의심받을 정도로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된다.

평가단은 5월 한 달 동안 10곳의 자치구 민원여권과를 방문해 친절도, 장단점을 분석하고 최근 보고서로 만들었다. 평가서에는 획기적인 서비스보다 “공무원증 미패용 및 창구 명찰이 없어 응대 직원 파악하기 어려움”(B구), “무표정한 얼굴과 사무적인 말투”(C구) 등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이 많다. 평가단으로 활동한 양천구의 한 직원은 “일을 다 보고 갈 때 ‘안녕히 가세요’란 인사를 안 하는 것도 신경이 쓰일 줄 몰랐다”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학 양천구청장은 “미스터리 평가단은 결국 우리 직원들을 스스로 바꾸게 하는 제도”라며 “민원여권과, 보건위생과 등 민원인 접점 부서 위주로 하던 것을 앞으론 다른 부서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친절’을 경쟁시키는 서울시


미스터리 평가단 제도는 서울시 차원에서도 중점 사업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시는 공무원 친절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불시 점검’의 일환으로 3월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 본청 다산플라자부터 자치구 민원여권과 등 시 산하 기관까지 170개 부서를 대상으로 매월 점검하고 있다. 연말에 점수 집계를 내 친절도가 높은 부서는 포상을 하고 낮은 부서는 특별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강서구도 최근 서울시청, 동 주민센터를 대상으로 한 미스터리 평가단을 꾸렸다.

황충석 서울시 고객서비스기획팀장은 “시민들이 단순 일 처리를 넘어 친절을 통해 ‘감동’받길 원한다”며 “친절도 서로 경쟁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시민들의 요구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불만을 실시간으로 제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친절도 평가가 아닌 ‘서비스 베끼기’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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