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으로 가장해 다른 구에 들러 친절도를 비교 평가하는 미스터리 평가단 제도가 최근 서울시와 시내 자치구에 도입됐다. 1일 오후 양천구 직원들이 A구청 민원여권과를 방문해 A구청 직원들의 친절도를 평가했다.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이후 양천구 직원들이 미스터리 평가단을 재현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양천구 제공
1일 오후 서울 A구청 민원여권과. 커다란 가방을 멘 여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오셨어요?”(구청 안내 직원)
“미용사 면허 좀 신청하러….”
안내를 받고 담당 직원 앞에 선 여성. 잠시 머뭇거리더니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질문 폭탄’을 던졌다. “미용사 서류 신청은 어떻게 하나” “건강증명서는 어디서 발급받는지” “반명함판 사진 2장의 크기가 달라도 되나” 등 5분도 안 돼 10개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 무표정하던 해당 직원의 표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굳어갔다. “미용실 사업자 등록을 위해 세무서를 들러야 한다”는 직원의 말이 이어지자 여성은 “대신 전화 좀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팽팽한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직원은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직접 하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 상황 종료. 구청 현관을 빠져나온 여성은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꽤 친절한 편이다”라며 직원을 평가했다. 그의 정체를 묻자 그는 “양천구 민원여권과 직원. 그리고 미스터리 평가단”이라고 대답했다. ○“스파이가 아닙니다”
그는 양천구가 지난달부터 마련한 ‘미스터리 평가단’ 제도 참가 직원 중 한 명이다. 미스터리 평가단은 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고객 접점에서 직원들의 친절도를 조사하기 위해 자주 하는 ‘미스터리 쇼퍼’ 제도를 본떠 만든 것이다. 손님을 가장한 평가단이 매장 서비스, 제품 관리 현황 등을 평가하는 게 미스터리 쇼퍼의 주 내용. 양천구의 경우 직원들을 다른 구로 보내 비교 평가하는 방식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하겠다는 것이다.
평가단은 일반 시민처럼 보이기 위해 복장부터 말투까지 짜인 ‘시나리오’대로 해야 한다. 이날 미용사 면허 신청을 하러 A구청에 간 직원은 미용사들이 애용하는 ‘빅 백’(큰 가방)을 들고 머리는 멋스럽게 빗어 넘기는 등 헤어 디자이너처럼 보이기 위해 준비했다. 점검 도중 평가표를 보거나 작성하는 것은 금물이다. 질문도 의심받을 정도로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된다.
평가단은 5월 한 달 동안 10곳의 자치구 민원여권과를 방문해 친절도, 장단점을 분석하고 최근 보고서로 만들었다. 평가서에는 획기적인 서비스보다 “공무원증 미패용 및 창구 명찰이 없어 응대 직원 파악하기 어려움”(B구), “무표정한 얼굴과 사무적인 말투”(C구) 등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이 많다. 평가단으로 활동한 양천구의 한 직원은 “일을 다 보고 갈 때 ‘안녕히 가세요’란 인사를 안 하는 것도 신경이 쓰일 줄 몰랐다”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학 양천구청장은 “미스터리 평가단은 결국 우리 직원들을 스스로 바꾸게 하는 제도”라며 “민원여권과, 보건위생과 등 민원인 접점 부서 위주로 하던 것을 앞으론 다른 부서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친절’을 경쟁시키는 서울시
미스터리 평가단 제도는 서울시 차원에서도 중점 사업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시는 공무원 친절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불시 점검’의 일환으로 3월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 본청 다산플라자부터 자치구 민원여권과 등 시 산하 기관까지 170개 부서를 대상으로 매월 점검하고 있다. 연말에 점수 집계를 내 친절도가 높은 부서는 포상을 하고 낮은 부서는 특별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강서구도 최근 서울시청, 동 주민센터를 대상으로 한 미스터리 평가단을 꾸렸다.
황충석 서울시 고객서비스기획팀장은 “시민들이 단순 일 처리를 넘어 친절을 통해 ‘감동’받길 원한다”며 “친절도 서로 경쟁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시민들의 요구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불만을 실시간으로 제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친절도 평가가 아닌 ‘서비스 베끼기’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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