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로 출석한 공판에서 판사에게 모욕감을 느꼈다고 주장하며 자살한 변모 씨(29·여)의 유서가 12일 공개됐다.
유족 측은 변 씨 유서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다. 유족 측은 또 가해자 진모 씨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
이날 동아일보가 입수한 변 씨 유서에 따르면 변 씨는 판사와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유서(6장)에서 “판사가 나를 성폭행한 진○○를 두둔하고 합의를 종용하는 등 모욕감을 줬다”고 밝혔다. 변 씨는 또 “판사가 내게 ‘중학교도 못 나오고 노래방 도우미도 하며 험하게 살아왔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내 말을 믿지 않았다”며 “가정형편이 어려웠고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함부로 거짓말을 하거나 남의 것을 탐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라고 적었다.
또 변 씨는 “판사가 ‘진 씨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데다 어리고 착하다’며 내가 헤프고 돈 때문에 억울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것처럼 말했다”면서 “그동안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모아 돈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날 믿지도 않으면서 왜 법정에 나오라고 한 것이냐”며 “노래방을 다니는 사람이면 강간을 당했어도 유혹한 게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변 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법정에 다녀온 뒤 여러 사람 앞에 벌거벗고 있는 것 같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성폭행을 당한 뒤 죽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살아보려고 간신히 버텨왔다”며 “이제는 내가 죽어야 내 말을 들어줄 것 같다”고 적었다.
변 씨는 유서 마지막에 “은행에서 5000여만 원을 인출해 뒀으니 실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 법적 대응을 해 달라”고 부탁하는 한편 가해자 진 씨를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검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유서에 명기했다. 유서 가운데 4장은 변 씨가 자살 장소로 택했던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호텔에서 발견됐고, 나머지 2장은 유족이 변 씨 집에서 뒤늦게 발견해 검찰에 제출했다.
한편 4월 말 보석 석방됐다가 변 씨가 자살하자 행방을 감췄던 진 씨는 11일 검거돼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됐다. 재판부는 변 씨가 자살하자 진 씨에 대한 보석을 취소한 바 있다. 검찰은 진 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24일 진 씨에 대한 1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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