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값 등록금’ 논란이 계속되자 전문가들도 나름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도 천차만별이다. 시각과 논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등록금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아직 이뤄지지 않아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전문가들은 “등록금 문제는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정부와 대학, 학생, 우리 사회가 모두 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 등록금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전문가 3인의 의견을 들어봤다. 》 ○ 이인수 수원대 총장
최근 수원대는 적립금 320억 원 중 250억 원을 장학금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반값 등록금 논쟁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개교 이래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진행했으며 이제 학교가 장학금을 확대할 여건이 됐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등록금 문제가 나오면서 대학의 적립금에 대한 지적이 많다. 2009년 기준으로 사립대 재단의 적립금 총액이 10조 원에 달하는데도 장학금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마다 적립금은 나름의 목적이 있다.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걸 본교와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다. 본교는 의학예비 과정, 미래인재 아카데미 등을 운영하면서 우수한 학생들이 부담 없이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장학금을 조성했다.
최근 3년간 등록금을 동결한 것도 행정조직 혁신 등으로 인력 활용의 효율성을 높여 등록금을 유지해도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등록금을 인하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의 교육 재정 확대와 더불어 대학마다 비용 절감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큰 비용 중 하나인 인건비를 줄일 때 대학들이 느끼는 부담이 있다. 대학 평가에서 교수 확보율이나 직원 규모 등이 ‘교육서비스 확보’ 측면의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작용한다.
따라서 정부는 대학 평가나 인증에서 단순한 수적 지표만 비교하기보다 대학 특성에 따라 인력의 운용 방식을 달리 적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대학들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학교 운영 방식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재정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도 각 대학이 처한 여건과 특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대학 등록금 갈등의 본질은 등록금 인상률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학생들의 무기력감과 분노에 있다. 학생들은 매년 꼼짝 없이 인상된 등록금을 받아들였다. 이런 일방적 과정이 고쳐지지 않으면 등록금을 조금 내려도 갈등은 언젠가 또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등록금을 낮추는 노력과 별개로 ‘등록금 예고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각 대학이 매년 수시모집 시점에서 신입생 등록금과 졸업 때까지 부담해야 할 등록금 및 장학금 계획을 알려주는 것이다. 현재 학생들은 입학이 확정된 2월에야 등록금이 얼마인지 알 수 있다.
2008년 국회 민생안정특별위원회가 이 같은 등록금 예고제를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은 경영상 간섭을 받기 싫어하고, 일부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의 빌미를 준다며 반대했다.
이번에는 진화된 등록금 예고제를 제안한다. 등록금 액수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물가상승률을 연동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년에는 올해 물가상승률의 50%, 2013년에는 2012년 물가상승률의 100% 이내에서 인상한다는 식이다. 등록금 총액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분명하기는 하지만 물가상승률 예측 실패로 또 다른 논란의 불씨를 남길 수 있다.
또 해당 학년만 적용받는 4년 동안의 등록금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같은 물건이라도 사는 시점마다 가격이 달라지는 것처럼 학번마다 그해 인상률을 달리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과도 또는 과소 인상률로 학생이나 대학 중 한쪽이 손해 볼 수 있다. 더욱 근본적인 해법은 학교와 학생이 약속을 하고 이를 준수함으로써 신뢰를 쌓는 것이다. ○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대학진학률이 80%에 달하는데도 청년실업률은 9%다. 이 가운데 현장에 바로 투입될 만한 기술을 갖춘 인력은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다.
현장과 연계되지 않은 고학력 인력이 넘쳐나 기업의 부담도 늘고 있다. 100인 이상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재교육 비용이 총 2조3049억 원에, 그 기간도 평균 19.5개월이라고 한다. 대학교육의 부실화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스터고와 같은 현장 중심의 직업교육을 살려야 한다. 이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기도 하다. 모든 학생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적성을 살려 기술을 배운다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줄어든다.
마이스터 제도는 기술 선진국인 독일의 경제발전과 기술력을 지탱하는 핵심 축이다. 마이스터가 되려면 만 16세부터 산업체 기반의 기술고교와 직업학교에 다녀야 한다. 이들은 현장 작업자와 엔지니어의 중개자 역할을 하며 경영감각까지 갖추게 된다. 마이스터라는 지위에 대한 국민의 평가도 높고, 이들은 화이트칼라 못지않은 존경과 부를 쌓는다.
한국도 마이스터고 졸업생이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면 대학 입시 위주의 교육을 근본부터 바꿀 수 있다. 이때 우리나라 청년층의 높은 대학 진학 욕구를 감안해 ‘선 취업 후 진학’의 학위 연계형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고학력자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중소기업을 기피하고, 기업은 현장 기술능력이 부족하다며 고학력자를 피하는 악순환은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마이스터고를 활성화하면 등록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세금 부담이냐 개인 부담이냐… 선진국도 등록금 홍역 ▼
대학 등록금은 외국에서도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다. 논란이 일고 있는 선진국은 한국과 사정이 다소 다르다. 한국의 등록금 논란은 학생 부담이 크다는 데에서 출발했지만 선진국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가 지원금 삭감에 따른 논란이 주요 이슈다.
미국은 대학 등록금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이다. 사립대 등록금은 연간 평균 2만1979달러로 공립대(5943달러)에 비해 4배가량 비싸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립대 등록금이 비싸지면서 이 격차는 줄어들고 있다.
공립대 등록금이 오르는 이유는 주 정부가 대학 재정 지원을 줄이고 있기 때문. 미국 정부는 내년에 적어도 30개 주 주립대에서 10% 이상씩 재정 지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경우 주 정부에서 받는 지원이 전체 재정의 25%에 불과한데 이 비율이 내년에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주 정부들이 지원을 줄이는 이유는 세금으로 대학을 지원하는 것이 주 전체에 도움이 되는지 회의적인 의견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은 정부 재정 지원 감소가 등록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캘리포니아 주의 대학 등록금은 2년간 30%가 올랐다. 일부 공립대 등록금은 사립대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랐다. “저렴한 등록금 때문에 주립대를 선택하던 흐름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영국도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대학 행정실을 점거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거의 모든 대학이 국공립대인 영국은 정부가 지원액을 낮추면서 등록금이 사상 최대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2, 3년 사이 극심한 경기 침체로 위기를 맞고 있는 영국 정부는 교육예산 감축을 시작했다. 2010∼2011년 고등교육 예산은 지난해 대비 1.6% 줄었다.
정부가 대학 재정을 보전해주기 어려워지자 대학의 파산을 용인해야 한다는 의견도 거세졌다. 영국 대학 중 25%가 호황기이던 2004∼2008년에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는 분석이 이런 의견에 힘을 보탰다. 특히 일부 대학들은 정부 지원이 끊겼을 때 운영할 수 있는 기간이 10∼20일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부실 대학 정리 논란이 함께 일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대학 지원금을 줄이면서 등록금 상한선을 현재 연 3375파운드(악 607만 원)에서 3배 가까이 오른 9000파운드(약 1620만 원)로 올리기로 했다.
영국전국학생연합 측에서는 “지금의 등록금 수준만으로도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2만2000파운드의 빚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보수당 측에서는 “대졸자의 빚은 졸업 후 소득 인상에 따른 소득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맞섰다.
등록금이 전혀 없는 핀란드에서도 최근 등록금이 이슈가 됐다. 대학 측은 “대학생들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대학에서 보내며 졸업을 연기한다”며 연 1000유로(약 160만 원) 정도의 등록금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등교육 비율을 낮출 우려가 있다는 반발이 거세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교 졸업생의 40% 정도가 대학에 진학하는 독일에선 중도우파 연합정권이 2005년 집권한 후 등록금을 부활해 학생 부담액이 연 500유로(약 78만4000원)에 이르자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여 대부분의 주가 등록금 부활 계획을 백지화했다. 학생 가정의 소득 수준에 따라 등록금을 내는 프랑스에선 등록금 부담이 크지 않아 사회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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