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의약품 재분류를 위해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에서 의사와 약사 대표들이 최원영 보건복지부 차관(가운데)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5일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모처럼 의료계와 약계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시작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의료계 4명, 약사계 4명, 소비자단체 4명 등 위원 전원이 참석해 4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지만 파행은 없었다. 21일 열리는 다음 회의에서는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재분류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과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감기약을 ‘약국외 판매약’으로 새로 분류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 아슬아슬한 중앙약심
이날 의료계와 약계 대표들은 보건복지부 보고 안건의 검토 순서와 문구 하나하나를 두고서도 날선 공방을 벌였다.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간 재분류를 본격적으로 검토하면 갈등이 격화될 것이 예상되는 이유다. 의약품 재분류는 의사의 처방권이 달린 첨예한 사안이라 2000년 의약분업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약사회는 즉각 복지부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다. 박인천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복지부가 너무 많이 몰아친 회의”라며 “복지부가 의약외품 전환품목에 대해 위원회의 의결 없이 곧바로 발표한다면 위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재호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이날 분류된 의약외품 목록에 대한 충분한 검토 시간이 부족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국민 편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행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비율은 8 대 2 정도. 전문의약품에서 일반의약품으로 전환이 검토되는 의약품은 잔탁 큐란 등 위장약, 손톱무좀 치료제, 히알루론산나트륨, 인공누액 등이다. 반대로 일반의약품에서 전문의약품으로 전환이 검토되는 의약품은 프로나제 등 소염효소제다.
○ 제약사 “슈퍼 판매 신중히”
의약외품을 8월부터 슈퍼에서 판매할 수 있다 하더라도 소비자가 직접 살 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제약사가 기존 유통망인 약국의 눈치를 보고 있어 슈퍼 판매 채널을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아제약은 “‘박카스=약’으로 50년 동안 장수했기 때문에 우선 약국 유통망을 유지할 것이다. 앞으로 일본 등 외국의 사례를 검토해 슈퍼 판매를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동국제약은 “복합마데카솔·마데카솔케어가 주력 제품이고 항생제가 포함되지 않은 마데카솔은 원래 약국에서 거의 팔리지 않았다. 당장 유통망을 바꾸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또 44개 가운데 23개는 생산실적이 없는 제품. 박카스의 지난해 매출이 1285억 원으로 가장 크고 나머지 제품의 매출은 100억 원 이하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도는 예상보다 떨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이동욱 보건의료정책관은 “최근 생산실적이 없더라도 슈퍼 판매 길이 열리면 생산을 재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열진통제 등 감기약의 경우 슈퍼에서 살 수 있기까지는 1, 2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약품을 약국외 판매약으로 분류하려면 약사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기 때문. 복지부는 위원회 논의와 공청회를 거쳐 올해 정기국회에 약사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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