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일본에서 발생한 한국인 여성 토막살인 사건 판결에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은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견해를 일본 정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16일 “일본 변호사협회 내 인권권익위원회를 통해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한 일본 지방법원의 판결과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을 납득하지 못한다는 유족의 견해를 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일본 외무성에 직접 이런 문제 제기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재판 사안을 한일 정부 간에 정식 의제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 변호사협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일본과의 양자회의를 계기 삼아 이번 사건에 대한 견해를 비공식적으로 전달할 소지가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열린 한일 영사국장회의 때에도 이번 사건의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14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그동안 유족 및 일본 검찰 측과 접촉해왔고 며칠 전 일본 검찰에 항소 포기 재고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일본 변협 소속 인권위와 협조방안을 협의하고 일본 정부에도 이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조병제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일본 정부에) 주의를 환기시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교부가 이 사건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유족 측의 요청과 함께 최근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책임 강화를 요구하는 국민 여론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검찰의 기소장에 따르면 범인인 이누마 세이이치(飯沼精一·61·무직) 씨는 2009년 10월 6일 가나자와(金澤) 시내 모처에 자신의 승용차를 주차해놓고 차 안에서 강모 씨(당시 32세)와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금전문제로 다투던 강 씨가 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걸려하자 이누마 씨가 격분해 질식사시켰다는 것이다. 이후 이누마 씨는 강 씨의 머리를 절단했고 머리 부분과 여행용 가방에 넣은 몸통을 각각 인근 산 속에 유기했다.
검찰은 범인인 이누마 씨를 명백한 살의를 가진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18년을 구형했지만 일본 법원은 지난달 27일 재판에서 “범인의 살해 의도가 분명치 않다”며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이누마 씨가 왼손으로 조수석에 있던 강 씨의 입을 막으려다 빗나갔고 우연히 목 부분의 신경을 눌러 강 씨의 심장이 멈췄다”는 변호사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범인이 강 씨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는지가 쟁점인 이번 재판에서 검찰이 살해 입증 증거로 내세운 것은 조수석에서 검출된 강 씨의 소변이었다. 검찰은 법의학자의 해부 결과를 근거로 “강 씨의 소변은 질식사할 때 나온 실금(失禁)”이라며 “범인이 약 15kg의 힘으로 최소 2, 3분 동안 목을 졸랐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범인은 소변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좌석 시트를 잘라내 버리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그러나 재판에 참여한 재판원(배심원)들은 법의학자에 대한 심문을 통해 △사후에 시체를 옮기는 과정에서 소변이 나올 수도 있고 △머리 부분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된 시체만으로는 질식사를 입증할 증거로 부족하다는 소견을 이끌어냈고 “살해의도를 입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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