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수도기념관이냐, 이승만기념관이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1일 03시 00분


‘이승만 동상에 페인트 투척’ 논란 부산 임시수도거리, 성격-명칭 싸고 시끌
市 “동상은 볼거리들 중 하나”… 4·19단체 “명칭 변경할 속셈”

부민동 주민 14명으로 구성된 마실 이야기꾼(마을 해설사)들이 관광객들에게 마을을
소개하기 위해 현장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부민동자치센터 제공
부민동 주민 14명으로 구성된 마실 이야기꾼(마을 해설사)들이 관광객들에게 마을을 소개하기 위해 현장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부민동자치센터 제공
폭 6∼12m, 길이 600m 골목길에 가로 세로 10cm짜리 회색 화강암들이 단아하게 깔렸다. 봇짐 진 피란 가는 사람들, 천막학교 벽화, 전차. 과거와 현재, 옛것과 새것, 역사와 젊음이 함께 숨쉬는 부산 서구 부민동 임시수도 기념거리 풍경이다.

그러나 정확히 17일 전 기념거리 중앙에 있던 동상은 사라지고 높이 50cm, 가로 세로 1m 받침대만 그대로 남아 있다. 주민들은 최근까지 이 동상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기념거리를 꾸미는 조형물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부산시가 임시수도 기념관을 이승만 기념관으로 조성하려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후 이 전 대통령의 동상인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며칠 뒤 이 동상에 붉은색 페인트가 뿌려졌다. 현재 이 동상은 보수를 위해 철거됐다.

논란은 부산시로부터 시작됐다. 부산시는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2년 6개월가량 이 전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등으로 사용돼오던 임시수도 기념관(사빈당) 옆 옛 부산고검장 관사를 헐어 임시정부 전시교육장으로 조성할 계획을 지난달부터 추진했다. 그러나 4·19민주혁명회 등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민주성지’ 부산에 이승만 동상이 세워진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동상 철거를 요구했다. 임시수도 기념관을 새롭게 꾸민 뒤 명칭을 ‘이승만 기념관’으로 변경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사실 논란이 일기 전 관할 서구청은 볼거리, 즐길거리가 빈약한 관내 사정을 감안해 바로 인근 동아대 부민캠퍼스와 연계해 ‘역사와 젊음의 이야기가 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지난해 2월부터 추진해 왔다. 23억여 원을 들여 이곳에 전쟁 이후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벽화와 역사 테마파크, 전차 미니어처를 설치했다. 물론 이 전 대통령 동상도 설치했다. 이달 말 기념거리 조성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건이 나자 부민동민들은 불만이 많다. 이곳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하순석 씨(75)는 “역사란 잘된 것도 있고, 잘못된 것도 있지만 그 자체가 역사다”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정준식 씨(20·동아대 행정학과 1학년)는 “개인을 우상화하는 동상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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