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씨(54·서울 노원구 상계동)와 김경숙 씨(50·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만나자마자 서로를 반겼다. 모습도 닮았고 이름도 한 끝 차이다. 결정적인 공통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30여 년 전 10대 시절 ‘안내양’이라 불리던 ‘버스 차장’을 했다는 사실. 까마득한 세월을 뒤로한 채 바쁘게 살아온 이들이 22일 오전 ‘1일 안내양’이 돼 30여 년 만에 버스 뒷문으로 ‘출근’한다. 이들은 예행연습을 위해 20일 오후 서울 중랑구 신내동 중랑공영차고지에 모였다. “옛날처럼 잘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하다가도 “(행사 당일 입을) 버스 안내양 유니폼이 왜 이렇게 촌스럽냐”며 호통치는 이들. 두 사람의 얼굴엔 기대감이 넘쳐흘렀다. ○ 30년 만의 “안 계시면 오라이∼”
서울시는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를 위해 매달 넷째 주 수요일을 ‘대중교통 이용의 날’로 정해 3월부터 캠페인을 벌여 왔다. 4월에는 여성 행사 진행요원들을 불러 ‘추억의 버스 안내양’ 재현 행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70, 80년대에 활동했던 ‘전직’ 버스 안내양을 등장시키자”는 제안이 나왔다. 시는 캠페인 행사장인 종로2가를 지나는 버스 노선 20개의 해당 회사에 협조를 구해 전직 버스 안내양을 섭외했다. 그중 두 김 씨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공성국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노선팀장은 “나머지 버스 18개 노선에는 버스 기사 아내를 22일 열리는 6월 행사에 ‘명예 안내양’으로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확히 32년 만에 버스 안내양이 되는 김경숙 씨. 그는 버스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 당시 53번 버스(현 262번) 안내양이었던 그는 같은 회사 버스 정비사와 결혼했다. 이후 ‘여성 버스 운전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운전면허를 따고 1997년부터 지금까지 버스 운전대(2211번)를 잡고 있다. 그는 “안내양 시절 버스 타겠다고 힘들게 뛰는 학생들이 딱했다”며 “버스 운전을 하는 지금도 그런 학생들을 보면 ‘내 새끼’ 같아 중간에 버스를 세운다”고 말했다. 그가 이번에 타는 버스는 중랑∼여의도를 오가는 262번. 과거 안내양으로 활동했던 버스다. ○ 대중교통 이용 캠페인도 ‘복고’
160번(도봉산∼온수동)에서 1일 안내양이 되는 김경순 씨는 1971년부터 1978년까지 경기 포천∼연천 전곡리를 다니던 시외버스에서 안내양으로 활동했다. 가장 보람됐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자 그는 “버스에서 내리던 군인들이 차비와 함께 꼬깃꼬깃 접은 ‘데이트 신청’ 쪽지를 주고 갔을 때”라며 웃었다. 그는 “반나절 이상 버스 안에서 미혼 남(버스 운전사)녀(안내양)가 함께 있다 보니 ‘버스 운전사-안내양’ 커플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의 남편도 버스 운전사(160번)다.
시에 따르면 버스 안내양은 1920년대부터 활동했으나 1989년 ‘버스 안내양 의무 조항’이 삭제되면서 자연스레 사라지게 됐다. 일당 2500원. 박봉에 시달리며 매일 오전 6시부터 12시간씩 같은 코스를 돌았어도 두 사람은 “지친 승객이 나로 인해 웃으며 내릴 때 가장 즐거웠다”며 웃었다. 교통카드로 차비를 내고 스마트폰으로 버스 위치를 추적하는 시대. 이들이 버스 안내양이 되겠다고 나선 것도 따뜻한 아날로그 문화를 승객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란다.
30년 만에 안내양으로 컴백하는 ‘왕 언니’들은 입을 맞춘 듯 한목소리로 외쳤다. “‘내리실 분 안 계시면 오라이∼’라고 목청 높여 외쳐야죠. 아, 버스 뒷문 옆 ‘탕탕’ 치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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