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의 ‘마라톤 대모’ 장분난 씨가 23일 남산녹색체육회관 사무실 벽에 붙여둔 마라톤 관련 스크랩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장 씨는 남산 마라톤의 메카인 이곳이 무허가로 헐릴 위기에 놓이자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남산의 ‘마라톤 대모’ 장분난 씨(60)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마라톤 마니아들의 쉼터였던 남산녹색체육회관(서울 중구 예장동 산 5-6)이 헐리게 됐기 때문이다.
남산녹색체육회관은 지난해 작고한 남편 이상학 씨가 1975년 ‘시민들의 체력장’으로 만든 간이휴게소. 복싱과 달리기 등 운동을 좋아했던 이 씨가 사재를 털어 웨이트트레이닝장과 탈의실, 간이세면대 등을 갖춰 놓은 미니헬스장이다. 남산 마라톤 훈련코스(왕복 7km)의 출발지에 위치해 하루 최대 400여 명의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이 짐을 맡기고 훈련하는 마라톤 메카가 됐다. 사무실에는 각종 마라톤 관련 기사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문제는 이 시설이 무허가라는 점. 서울 중구는 20여 년 전 이곳에 사무실과 천막시설을 지어주는 등 35년 동안 사실상 ‘합법’으로 인정하다 지난해 녹지공원을 만들어야 한다며 철거를 결정했다. 중구는 1996년 이 씨에게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장까지 줬는데 상의 한 번 하지 않은 채 철거를 결정해 장 씨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3년 전부터 남편이 술에 빠져 살았어요. 그땐 몰랐죠. 지금 생각하니 우리 시설을 철거하려는 움직임을 알았던 것 같아요. 지난해 8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10월 철거하라고 통보가 왔어요.” 매일 7km를 왕복해 달리던 장 씨도 요즘 스트레스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장 씨는 건물에 대한 소유권이나 보상을 바라진 않는다. 다만 남편과 함께 30년 넘게 지켜온 ‘일터’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다는 게 소박한 소망이다.
남산녹색체육회관 철거 소식에 마라톤 동호인들도 장 씨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달리는 노익장’ 윤용운 씨(69) 등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은 이곳에 새로운 마라톤 훈련보조시설을 만들어 장 씨에게 관리를 맡기자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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