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좌담]반값 등록금과 언론 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일 03시 00분


반값 등록금은 ‘젊은이들의 문제’… 정치적 접근 피해야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반값 등록금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 박명식 미디어연구소장, 이주향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동률 위원, 최영훈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반값 등록금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 박명식 미디어연구소장, 이주향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동률 위원, 최영훈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5월 22일 ‘반값 대학 등록금’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사회 전체에 일파만파의 파장이 미치고 있다. 황 원내대표의 주장은 포퓰리즘 논란을 빚었으며 청와대나 정부와의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채 나왔다고 하여 현 정권의 4년차 증후군이라는 진단도 일부에서 제기됐다. 또 등록금 인하를 위한 대학생들의 시위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등록금 부담이 크다는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나 어떻게 얼마나 내려야 할지에 대한 처방을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반값 등록금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황 원내대표가 감세정책 철회 등과 더불어 반값 등록금을 주장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포퓰리즘이란 비난을 받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포기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 재정의 측면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을 것입니다.

이진강 위원장=반값 등록금 문제가 정치 이슈가 됐습니다. 이 문제를 정권 획득을 위한 표 얻기의 수단으로 삼은 것입니다. 교육 문제는 물질적 금전적으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또 등록금을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처럼 ‘반값이다’ 이렇게 접근하는 게 맞는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등록금이 교육과 어떤 관계인지, 이걸 일반 상품의 개념에 얹어서 해도 될 일인지 하는 근본 문제부터 짚어야 합니다.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선 무상 또는 무상에 가까운 교육을 합니다. 그런 나라들은 처음부터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사정이 다른 우리가 지금 그런 식으로 간다면 사회적 재정적으로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어떻게 감당할지도 살펴야 하고요. 정치인들은 이거야말로 파급력이 크고 표가 움직이는 범위도 크니까 툭툭 던집니다. 그래 놓고선 감당을 못 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거죠. 누가 어떻게 길을 잘 잡아 이끌 것인가. 언론이 해야 합니다.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황 원내대표가 야당이 제기할 만한 이슈를 선제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정치적 동기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동아일보는 첫 보도에서 포퓰리즘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와 함께 교육의 본질과 관련한 대안 제시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학생, 학부모의 고통을 발 빠르게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주향 위원=정치인이 정치적 동기를 갖는 건 당연합니다. 이른바 4년차 증후군도 필요합니다. 막강한 정권은 힘이 빠질 때 자기 성찰이나 반성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5월에 나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의 청소년 행복도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23등으로 꼴등을 했습니다. 그것도 22등과의 격차가 20점 이상 났습니다. 그 앞의 10여 개국은 국가 간 격차가 거의 없는데 말입니다. 이런 것이 대학생들의 우울증, 높은 자살률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는 나라예요. 모든 정책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우리 정도 부를 이룬 나라라면 학생, 학부모, 학교, 정부가 반값 등록금을 어떻게 실현할지를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신문은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지’를 논해야지, ‘된다, 안 된다’를 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동률 위원=동아일보는 정치면에 강합니다. 그 때문에 어떤 이슈를 정치적으로 보는 편향성이 지나치게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반값 등록금은 ‘황우여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의 젊은이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와 분리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어찌 해 볼 수 없는 한국적 상황이 있습니다. 2009년 기준으로 대학진학률은 82%인데 청년고용률은 22.9%입니다. 게다가 대졸 청년 대부분이 대학 교육이 필요 없고 급여도 턱없이 적은 일자리에 만족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유럽은 국가에 이익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무상으로 교육합니다. 미국은 시장주의 관점에서 수익자 부담으로 합니다. 이런 연원을 정확하게 짚어 줘야 합니다. 등록금 문제는 이 사회의 마그마가 분출한 것이지 정치적 문제라거나, 정권의 4년차 레임덕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학생들을 비롯해 일부에선 반값 등록금을 2학기부터 당장 실현하라고 하지만 대학의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할 듯합니다.

이 위원장=많은 사람이 우려한 것은 선출된 지 며칠 되지 않은 황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을 주장하고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파급효과가 크고 중요한 문제를 언제부터 연구해 놓았기에 그렇게 빨리 내놓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반값 등록금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다는 계산법이 나오지 않았어요. 예전에 정주영 씨가 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서 반값 아파트를 공약했을 때는 계산을 해 냈어요. 그런데 지금은 계산이 안 되니까 뒤늦게 구조조정을 한다느니, 장학금 어떻게 주겠다느니 합니다. 그동안 스스로 문을 닫아야 하거나, 그야말로 한번 툭 치면 넘어질 지경에 처해 구조조정 대상이던 대학들이 이젠 기다리고 버틴다고 합니다. 반값 등록금을 하면 재정 지원도 있을 테고 여기저기서 돈이 들어올 테니 살 길이 보인다는 겁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현 정권이 출발했을 때도 학생들이 반값 등록금 시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반값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니까 동결해 달라고, 조금 내려 달라고 요구했죠. 3∼4% 올리면 동결하라는 식으로 시위를 해 온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나라당이 재·보선에서 패배하고 젊은 층이 돌아선다는 위기감을 느끼자 정치 이슈로 선점하려 했습니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했기 때문에 당정 간에도 갈등이 많았습니다. 언론이 이를 비판은 했는데 그 비판이란 게 표피적이거나 맥을 잘못 짚은 것도 많았습니다.

김 위원=대학을 비판하면 마녀 사냥이라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연수 간 교수들이 골프를 즐긴다는 비판도 겸허히 수용해야 합니다. 최악의 예겠지만 어떤 대학은 1년에 한두 번만 강의를 들어도 석사 박사 학위를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 구조조정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심각한 상황에 있는 대학이 꽤 있습니다. 이번에 한 신문의 보도로 일반에도 알려졌지만 미국 대학은 방학이면 교수들에게 월급도 안 줍니다.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언론이 메스를 가해야 합니다. 신문에서 심층보도, 탐사보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동아 같은 월간지는 긴 이야기로 대학을 해부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위원=대학에 올인하다 보니 중고교가 거대한 인권 탄압의 장이 됐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는다고 하는 상업고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좌절과 우울 그 자체였습니다. 대학생들은 연애가 불가능하고, 결혼이 불가능하고, 제대로 된 직장 잡기가 불가능하고, 그래서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한 ‘4불(不) 시대’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88만 원 세대라 자조하고, 시간당 5000원짜리 아르바이트에 목숨 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TV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온달 콤플렉스로 도배하다시피 합니다.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인데 이 모두를 개인의 문제로 돌립니다. 이런 현상들 때문에 반값 등록금 문제가 뇌관이 되고 많은 사람이 거기에 호응하게 되는 겁니다. 중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대학을 안 가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반값 등록금 주장이 오프라인에서는 큰 이슈가 됐는데 인터넷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용했습니다. 다만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야당 측이 가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3년 전 촛불의 추억이랄까, 그런 것이 있어서 정치권이 약간 긴장을 했지만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무거운 주제보다는 누구든 쉽게 의견을 낼 수 있는 가벼운 주제에 쏠리는 인터넷의 특성이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위원장=등록금과 관련해 대학들도 스스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개별 대학의 이해가 상충하니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풀기 위해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특히 언론은 국민이 궁금해 하는 점을 후련하게 짚어 주고,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정리=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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