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박상원 씨와 정애리 씨가 월드비전 홍보대사 자격으로 에티오피아를 방문해 봉사활동을 펼친 뒤 11일 오후 귀국했다. 현지 시간으로 9, 10일 펼친 봉사활동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도 함께했다.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참전해 한국에 도움을 줬던 나라. 은인의 나라에 보답하고 돌아온 소감을 박 씨가 전해 왔다. 》
우기를 맞은 에티오피아는 푸른 풀밭과 잎이 무성한 나무로 유난히 아름다웠다. 에티오피아 방문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1년에 두세 달밖에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 풍경 뒤에 지구 온난화, 수도시설 부족 때문에 심각한 식수 문제를 겪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아름다움을 즐길 수는 없었다.
월드비전 홍보대사 자격으로 에티오피아에 8일 도착해 9일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봉사활동 첫째 날 방문한 케베나 마을은 수도 인근인데도 환경이 열악했다. 길거리를 소독하고 쓰레기를 줍는 동안 이명박 대통령도 함께했다. 3일 동안의 국빈 방문 중 1박 2일을 봉사활동에 사용하는 일정이었다.
10일엔 6·25전쟁 참전용사가 살고 있는 가레 아레나 마을로 향했다. 보건소와 화장실을 짓기 위해 낡은 집을 해체하고 수돗가 정비작업을 할 예정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깡총한 한복을 입은 소녀가 나와 있었다. 치맛단은 무릎, 소매는 팔뚝 중간에 겨우 올 정도였다. 알고 보니 한국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몇 년 전 한국으로 건너가 심장수술을 받고 돌아온 소녀였다. 목숨을 잃을 뻔했던 그 아이는 이제 한국에서 선물 받은 한복이 작아질 정도로 쑥 자라 있었다.
참전용사를 만난 자리는 그래서 더욱 가슴이 뭉클했다. 참전용사가 가슴에 소중히 품고 있는 훈장에는 한반도가 새겨져 있었다. 에티오피아에 남아 있는 참전용사의 수는 350여 명이라고 들었다. 젊은 시절 죽을 각오로 이름도 모르는 지구 반대편 나라에 와서 도움을 줬던 이들이 여전히 그렇게 많이 살아 있다. 힘든 점이 없냐고 묻자 몸이 아프고, 자식들이 걱정된다고 했다. 참전용사뿐 아니라 그들의 자녀까지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들에겐 자신들이 수십 년 전 도움을 줬던 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 자신의 나라를 돕는다는 사실이 큰 자부심이다. 이번에 방문한 지역에는 목공예나 용접기술을 가르치는 사업장이 있다. 아이들을 가르칠 유치원 건물도 세워질 예정이다. 그냥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는 원조를 하기 위해서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이제 어린 소녀의 생명으로, 새 보건소와 화장실로, 수많은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내년이면 내가 월드비전 친선대사가 된 지 20년이 된다. 막 친선대사가 됐을 때는 아직 한국이 외국에 원조하는 것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친선대사 자격으로 해외 봉사활동을 나가면 어떤 직함도 없이 그저 한 개인으로 봉사를 하기 위해 와 있는 외국의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대체 언제 저럴 수 있을까 하며 부러워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 그런데 이번 에티오피아 방문에서는 이제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젊은 나이에 그런 성숙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부럽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각지의 수많은 한국 젊은이, 은퇴한 시니어 봉사자들이 내가 방문한 마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오지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만난 그들 한 명 한 명은 모두 천사였다. 나 역시 내가 받은 박수는 대중에게 진 빚이라는 말을 늘 기억하려 한다. 도울 수 있는 것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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