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대구 달서구 송현1동 주민자치센터 3층 소회의실에서 함박웃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뒤뚱거리며 율동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손에는 별 모양의 장갑 소품을 끼고 높이 들고 마구 흔든다. 주름진 얼굴은 찡그렸다가 정색하기도 하면서 연기를 했다. 목소리는 수시로 변했다. 아이처럼 ‘깔깔’거리는가 하면 ‘어흥∼’ 하며 호랑이 흉내도 냈다. 강사는 “동작을 크게 하고 목소리는 최대한 비슷하게 내는 게 어린이들의 관심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인 10여 명이 듣고 있는 것은 ‘동화구연강좌’였다. 이들은 정년을 마치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왔다. 시작은 단순했다. 달서구예절대학에서 ‘어린이예절강사’ 자격증을 따고 유치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할 방법을 생각했던 것. 전통예절과 동화구연을 접목하면 좋겠다는 의견에 곧바로 모임을 만들었다.
주민자치센터 공간도 ‘시설사용신청서’를 쓰고 빌렸다. 김무웅 달서구 평생교육과 주무관은 “주민센터가 운영된 이래 주민들이 직접 사용신청을 낸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박성출 모임 회장(63·여)은 “노년에 새로운 기쁨을 얻었다”며 “앞으로 요양원, 노인복지관 등에서도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좌 내내 연기동작을 어색해 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따라한 청일점 김재태 씨(69)는 “손자, 손녀들을 상대로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며 “가족간의 화합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2000년부터 운영 중인 주민자치센터가 탈바꿈하고 있다. 행정서비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욕구에 따라 맞춤 프로그램들을 선보이고 지역 사업도 주도하는 등 참여공간으로 거듭났다. 달서구 신당동은 최근 이용률이 떨어지는 헬스장을 없애는 대신 ‘공동육아나눔터’를 만들었다. 젖병을 세척하는 주방, 어린이 수면실, 샤워장 등을 갖췄다. 주민 30여 명은 육아문제를 서로 도와 해소한다. 이들은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해 ‘다문화가정 자녀발달 놀이교실’ 등도 운영한다. 남구 봉덕동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원어민 영어강좌’를 하고 있다. 대구지역 주민자치센터는 모두 134개. 주민참여 프로그램은 843개에 이른다. 센터당 평균 6개를 운영하는 셈이다. 하루 평균 1만3100여 명이 이곳에서 여가를 보내고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사업을 추진한 경우도 생겼다. 북구 무태·조야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올 3월 대구시에 동하천의 낡은 잠수교를 리모델링해줄 것을 요청해 800만 원의 예산을 확보하기도 했다.
대구시도 다양한 지원책으로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제출하는 사업을 검토해 예산을 지원한다. 올해부터는 센터별 운영평가를 통해 총 2000만 원의 시상금을 연말에 지급할 계획이다. 조기암 대구시 자치행정과장은 “앞으로 주민센터 우수사례를 지역에 전파하는 등 센터가 주민들의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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