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책 리플레이]“농축산물 물가 잡겠다”며 시행한 中期 선행관측 점검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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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5일 03시 00분


작년6월 “가을에 배추값 떨어진다”더니 4배 폭등… ‘거꾸로 전망’

《 2009년 9월 정부는 “계절마다 널뛰는 ‘롤러코스터 농산물 물가’를 잡겠다”며 야심 찬 계획 하나를 발표했다. ‘농축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중기 선행 관측’ 사업이었다. 매달 3∼6개월 뒤의 농산물 가격과 수급(需給)을 예측하는 사업으로 농민과 유통업자들이 농산물의 생산·수입량을 미리 예상하고 조절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였다. 중기 선행 관측은 먼저 배추, 무, 대파, 양파, 돼지고기, 닭고기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6개 품목을 대상으로 했다. 분석을 맡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선진국의 사례를 보겠다”며 미국까지 다녀오는 등 반년 남짓한 시간을 투자해 분석 모델을 개발했다. 이를 토대로 연구원은 작년 6월부터 중기 관측 자료를 내놓고 있다. 지난달로 만 1년을 맞았다. 》
지난해 3월 배추 값 폭등 당시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주부가 배추를 고르는 모습. 정부는 급격한 농산물 가격변동 대책으로 ‘중기 선행관측 사업’을 시작했지만 예측력이 떨어져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3월 배추 값 폭등 당시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주부가 배추를 고르는 모습. 정부는 급격한 농산물 가격변동 대책으로 ‘중기 선행관측 사업’을 시작했지만 예측력이 떨어져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DB
하지만 그동안 연구원이 거둔 성적은 초라하다. 동아일보가 연구원의 전망자료와 실제 농축산물 가격 변동을 비교한 결과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배추, 대파, 무처럼 가격 변동 폭이 컸던 농산물은 ‘폭등’을 ‘폭락’으로 예측하는 등 정반대의 전망을 쏟아낸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일선 농가에서는 정부의 수급 분석 역량과 실효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한 달 만에 번복… ‘중기관측’ 무색

지난해 5월 관측 시작 당시 정부는 “중기 관측은 지금까지의 단기 관측(1, 2개월 뒤 전망)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중기 관측은 생산·유통업자들이 씨를 뿌리거나 수입을 하기 전에 제공하는 정보이기 때문에 이들이 재배 면적이나 사육 규모를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수급 안정을 위한 근본적 가이드라인이 될 거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이 잘못된 것이라면 시장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불행하게도 실제로 그랬다. 지난 1년간 연구원의 중기 관측 자료를 보면 시장의 움직임과 동떨어진 전망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난해 6월 연구원은 배추 중기 관측을 통해 “7∼9월 배추 값은 작년보다 떨어질 것이고, 9월에는 값이 특히 더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7∼9월 배추 값은 전년 동기 대비 최대 4배까지 뛰어올랐다.

‘중기’ 관측이란 말이 무색하게 한 달 만에 관측 결과가 바뀌기도 했다. 작년 7월 배추 전망에서는 한 달 전의 관측 내용을 완전히 뒤집고 “8, 9월 배추 가격이 작년보다 5%가량 오를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하지만 8, 9월 도매시장 배추 값은 전년보다 35∼185%가 폭등했다.

올 들어서도 관측 적중률은 썩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올 3월 연구원은 “5∼7월 배추 값은 작년보다 낮겠지만 평년보다는 높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4월에는 “배추 수급 조기예보지수는 6, 7월경 ‘정상’으로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추 값이 껌 값보다 싸진 올해 배추 값 급락을 전혀 경고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관측 실패는 대파, 무 등 다른 주요 작물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 6월 연구원은 대파 중기 관측을 통해 “하반기(7∼12월) 가격 약세가 예상되니 심는 것을 자제하라”고 권했지만 이 시기 대파 값은 연초보다 2배나 비쌌다.

○ 기상 변수 무시…‘무늬만 관측’ 지적

이 같은 실패에 대해 연구원은 기상 변수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농산물 수급 전망이 제대로 나오려면 기상 전망 데이터가 제대로 입력돼야 하는데 실제 분석에서는 ‘평년 기상’을 가정하고 중기 관측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중기 관측은 ‘파종 면적’ 같은 경제학적 변수를 중심으로 분석한 것”이라며 “요즘 가장 큰 농산물 수급 불안 요인이 기상 변수라는 점에서 실제 시장 동향과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그는 “제대로 하려면 기상청과 농촌진흥청이 공동으로 중장기 기상 데이터 및 강수량과 온도 변화에 따른 작물별 생육 영향 연구를 해야 하지만 현재로선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결국 가장 결정적인 변수를 무시한 비현실적 분석이 중기 관측으로 나오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기 관측이 실리는 연구원 월보에는 중기 관측 내용이 아예 빠지는 달도 생기고 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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