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모에 시민권을 허락하자. 외화내빈(外華內貧)이란 말에서 드러나듯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겉모습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꿔야 한다는 인식을 우선시해 왔다. 화장품이나 성형수술처럼 외모를 낫게 바꾸려는 뷰티산업은 유례없이 번창하지만 외모를 중시하는 태도는 천박하게 여긴다. 》
그러나 동아일보 주말섹션 ‘O2’와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의 ‘한국인의 마음 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은 마음속으로 이미 외모를 중시하며 큰 거리낌 없이 이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법 체류자’처럼 사회의 주요한 화두로 자리 잡았지만 담론의 음지에 머물던 외모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릴 때가 됐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번 ‘한국인의 마음 지도’ 조사는 ‘한중일 마음 지도 프로젝트’의 하나로 전국 남녀노소 1000명을 대상으로 했다. 프로젝트에는 대홍기획(콘텐츠 기획)과 엠브레인(설문 실시)이 파트너로 참여했다. 이번 기사는 4월 30일자, 5월 21일자 커버스토리에 이은 세 번째 후속 기사다. 4월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여 교수가 새롭게 자료를 분석했으며, 대학생 등 2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추가로 실시했다.
○ 외모 - 자본
한국인은 실제 자신의 연령보다 약 3.7세 어리게 자신의 나이를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수록 실제 나이와 ‘인식 나이’의 차이는 커졌다. 20대와 30대는 그 차이가 각각 ‘0.62세’, ‘2.89세’로 나타났지만 40대는 ‘5.08세’, 그리고 50대는 무려 ‘7.07세’의 차이를 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젊게 보고자, 혹은 보이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 것이다. 이런 결과는 일면 노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거부감이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사회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50대는 과거의 초로(初老)가 아니라 중년으로 인식되고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경향이 짙다는 것도 한 이유로 들 수 있다. 이른바 ‘노모어엉클(No More Uncle·난 아저씨가 아니야 혹은 나 오빠야)족’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50대는 주로 6·25전쟁 직후 태어난 이른바 1차 베이비붐 세대(1954∼1963년)다. 이들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주역이었고 학력과 소득수준도 이전 세대에 비해 높다. 또한 일탈을 꿈꾸면서도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이를 위한 소비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자신의 외모에 투자할 용의가 충분하다고 풀이된다.
결국 중년층의 나이보다 어리다 또는 ‘나는 동안(童顔)이다’라는 인식은 젊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이 더 어리게 보이기 위해 투자한 외모에 대한 자신감의 반영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결과가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더 어리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달 200만 원 미만을 버는 사람은 실제와 인식 나이의 차가 ‘2.02세’였지만 월 소득 700만 원 넘게 버는 사람은 ‘6.52세’나 자신을 젊게 봤다. 소득과 동안을 추구하는 욕구가 정비례한 것이다. 이는 젊게 보이는 사람이 소득이 높다고도 볼 수 있지만 반대로 고소득자가 외모를 가꾸는 데 그만큼 투자를 한다고도 해석된다.
최명기 부여다사랑병원 원장(정신과 전문의)은 “보통 자신의 얼굴에 대한 느낌은 현재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며 “소득이 높다는 것은 나름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므로 자신이 더 젊고 예쁘게 보이기 쉽다”고 해석했다. 그는 “소득이 높을수록 지속적으로 외모에 투자하는 사람이 많다”며 “투자를 했으니까 분명히 나아졌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이 믿음 때문에 투자를 계속 하게 된다”고 풀이했다.
캐서린 하킴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사회학)는 아름다운 용모, 섹시한 매력, 건강미와 활력 등을 ‘에로틱 자본(Erotic Capital)’이라고 규정했다. 사회, 문화, 경제적 자본처럼 외모도 하나의 자본으로 작용해 개인의 부를 늘리는 데 한몫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소득자는 외모라는 자본을 더 늘릴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이는 다시 더 많은 부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동안과 관련해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 외모 - 자신감
중장년층과 고소득자와는 달리 취업경쟁에 시달리는 20대, 대학생에게 외모는 자신감과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외모를 가꾸는 일환인 ‘나는 몸매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항목에 대학생 40.0%가 긍정적 답변(‘매우 그렇다’와 ‘그렇다’)을 했고, 20대는 36.5%가 긍정적 답변을 했다.
직장 초년생에 속하는 이재팔 씨(28)는 “몸매관리는 단지 외모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관리”라며 “자기관리에 철저한 모습에서 자기만족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20대들은 형제자매 없이 어려서부터 홀로 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아의식과 자존감이 강하다는 것도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인터넷이나 TV를 온통 도배하는 연예인 관련 내용의 상당 부분이 그들의 몸매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를 따라하고 싶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는 의견도 있다.
외모는 몸 자체를 교정·수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치장하느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른바 명품추구지수를 알아볼 수 있는 ‘나는 기회가 되면 고가의 명품을 많이 사고 싶다’는 항목에 대해 역시 20대(47.3% 긍정)와 대학생(40.0% 긍정)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젊은층에서 명품을 추구하는 욕구가 강한 것은 이례적으로 풀이된다. 고소득 고연령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명품이 젊은층의 자기과시 또는 자기정체성을 표현하는 대상으로 빠르게 옮아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학생 배준강 씨(25)는 “예전엔 명품을 들고 다니는 또래들을 보면 ‘사치한다’거나 ‘부모 잘 만났다’고 했지만 요즘은 ‘멋있고 능력 있는, 자신을 잘 꾸미는 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품으로 꾸민 외모가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젊은층의 이런 심리에는 자신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도사리고 있다고 풀이된다. 또 외모가 대변하는 자신감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일 수도 있다. 취업과 직장 내 경쟁 속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자신이 뒤처질지 모른다는 사회적 강박관념의 발현으로도 해석된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marnia@d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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