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이건 몰랐지? 학교로 떠나는 깜찍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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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9일 03시 00분


“수박 참 시원하겄어~” 여름방학을 맞이한 전북 순창고 2학년 학생들. 학교 보충수업이 끝난 뒤 돗자리를 펴고 여름휴가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수박 참 시원하겄어~” 여름방학을 맞이한 전북 순창고 2학년 학생들. 학교 보충수업이 끝난 뒤 돗자리를 펴고 여름휴가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무덥고 습한 날씨에 불쾌지수가 상승한 14일 오후 5시경, 전북 순창고의 학생 쉼터 ‘홈베이스’. 얼마 전 여름방학을 맞아 학교 보충수업에 참가한 이 학교 2학년 여학생 6명이 오더니 돗자리를 펼쳤다. 수업이 끝나고 모두들 화장실에서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은 뒤였다. 아침에 미리 사서 행정실 냉장고에 맡겨놨던 수박 한 통을 가져와 잘랐다. 한 학생은 튜브를 꺼내 불어 허리에 꼈다. 마치 파라솔 세우듯 돗자리 주변에 색동우산도 펼쳐놓았다. 여고생들의 수다가 시작됐다. 수박을 크게 한 입 베어 문 한 학생이 외쳤다. “아, 시원∼하다!”》
이건 휴가철 바다나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 아니던가! 휴가지가 아닌 학교에서 이런 진풍경이 연출된 연유는 뭘까? 다음은 수박을 사온 당사자 김혜빈 양(17)의 설명.

“방학 동안 학교에서 진행하는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에 참여하는 고교생이 많잖아요. 그렇다보니 남들처럼 시원한 곳을 찾아 여름휴가를 떠나긴 어렵죠. 친구들끼리 모여서 오랫동안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학교에서 보내는 휴가’를 계획했어요. 진짜 해변에 놀러온 것처럼 진실게임도 하고 개인적 고민, 학업고민을 털어놓고 나니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오늘 찍은 사진은 바닷가 풍경이랑 합성해서 미니홈피에 올릴 거예요!(웃음)”

휴가. 고교생에겐 ‘사치’다. 방학이라고 해도 학교 보충수업, 자율학습에 참여하거나 학원 수업을 듣느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방학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겨우 시간 내어 며칠 놀러갈라치면 ‘공부하기도 바쁜 시기에 이래도 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다. 특히 수능을 목전에 둔 고3에겐 휴가는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이들이라고 어찌 떠나고 싶지 않겠는가. 푹푹 찌는 날씨에 마음만큼은 휴가지로 향한 고교생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더위를 피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나름의 방책을 강구한다. 학교 안에서 각종 소품을 활용해 휴가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학교는 곧 바다고, 산이다. 고교생의 학교 안 각양각색 휴가 모습. 한번 들여다볼까?

○옥상서 선탠, 비치발리볼 게임… 여기가 바다다!

여름철 최고 인기 휴양지는 단연 해수욕장. 경기의 한 남고 3학년 서모 군(18)은 지난 주말 인근 쇼핑센터에서 화려한 꽃무늬 패턴과 핫핑크 색감이 돋보이는 해변용 반바지를 구입했다. 길거리 판매대에서 선글라스도 하나 샀다. 보충수업이 시작하는 날 친한 친구와 함께 바캉스 패션으로 교내를 활보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 해수욕장에 간 듯한 기분이라도 느끼기 위해서란다.

외삼촌댁에 들러 아이스박스도 빌려왔다. 차가운 물을 가득 채워가서 자습시간에 발을 담그고 있기 위해서다. “교실에 콕 박혀 공부할 수밖에 없는 고3의 답답한 심정을 헤아려주신다면 이 정도는 선생님도 애교로 봐주실 것”이라는 게 서 군의 설명.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교 옥상에서 선탠도 할 생각이다. 누나에게 선탠오일을 빌리고, 햇볕이 너무 뜨거울 경우를 대비해 파라솔 대용으로 대형우산도 가져갈 예정이다.

서 군은 “고3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교실에만 있다보니 햇볕을 쬘 여유도 없을 때가 많다”면서 “답답하고 초조한 상황이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광합성이라도 하면서 기분전환하면 학습능률도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비치볼을 가져와 비치발리볼 게임을 하는 남학생들도 있다. 한여름엔 운동장에 나가 뛰기가 벅차기 때문. 교실에서 갖고 놀기에 안전할 뿐 아니라 해변을 연상케 하는 비치볼이 딱이다. 다음은 올해 서울 경기고를 졸업한 건국대 1학년 김종현 씨(19)의 회상.

“교내 빈 교실을 아예 해변의 경기장처럼 꾸몄어요. 교실 한가운데 책상을 한 줄로 죽 늘어놓고 네트처럼 만든 거죠. 비치볼은 세게 던지면 바람의 영향을 받아 예상한 방향과 다르게 날아가서 엄청 재밌어요. 8∼20명이 점심시간에 두 팀으로 나뉘어 음료수 내기를 하곤 했는데, 게임이 끝나고 다같이 음료수를 마시면 피서가 따로 없었죠.”(김 씨)

○수돗가 물놀이, 평상서 낮잠… 여기가 산이다!

여름휴가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물놀이. 일반인들이 물놀이하러 계곡에 간다면? 고교생은 수돗가로 간다.

경남의 한 여고 2학년 이모 양(16). 그는 최근 친구 7명과 함께 야간자율학습이 시작하기 전 석식시간에 운동장의 수돗가에서 한바탕 물놀이를 했다. 이는 이틀 전 계획된 것. 이 양과 친구들은 옷이 물에 젖을 상황을 대비해 미리 여벌의 옷을 챙겨갔다. 완벽한 바캉스 패션을 갖추기 위해 반팔 티, 반바지뿐 아니라 ‘조리’(엄지발가락을 끼워 신는 샌들)도 신었다. 이 양은 밀짚모자까지 썼다.

이 양은 “수돗가 물놀이는 계곡 물놀이 못지않게 신난다”고 했다. 손에 물을 받아 서로에게 뿌리고,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스로 물을 ‘발사’하면서 30분 남짓 실컷 놀고 나니 계곡 물에 몸을 담근 것처럼 흠뻑 젖었다는 것이다. 뒤처리는? 교내 체육관에 샤워실이 설치돼 있어 문제없었다.

“더위도, 스트레스도 싹 가시는 느낌이었어요. 원래 물에서 놀고 나면 밥이 맛있잖아요. 그날따라 석식이 어찌나 맛있던지! 말복 즈음에 한 번 더 놀 계획이에요. 그땐 물총, 물풍선도 가져오기로 했어요.”(이 양)

나가 놀기도 그저 귀찮은 학생들은 교실에서 노닥거리며 산 속 휴가기분을 만끽하기도 한다. 15일 방학한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1학년 교실. 이 반 학생들은 보충수업 중 점심시간이 되면 책상들을 다 붙여 ‘임시 평상’을 만든다. 이 평상 위에서 편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드러누워 낮잠을 즐긴다.

이 반 학생인 이모 군(16)은 “학교가 산 속에 있어 창문을 열면 산바람이 불어오고 매미소리도 들린다”면서 “밥을 먹은 뒤 나른한 상태에서 단잠을 자고 깨면 ‘여기가 무릉도원이구나’ 싶다”며 웃었다.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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