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소방방재청장으로 내정된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 이 내정자는 부친에 이어 아들까지 3대가 소방관인 ‘소방 가족’ 출신이다. 동아일보DB
20일 아침 고속철도(KTX)를 타고 대구로 향하던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신임 청장 내정자)의 마음은 착잡했다. 18일 “후배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사표를 제출한 뒤 두 달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 묘소를 찾는 길이었다.
이 내정자는 열차 안에서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았다. 청와대였다. 신임 소방방재청장에 내정됐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서울행 열차를 타야 했다.
그의 부친은 40년간 소방관으로 근무하다 순직했다. 부친은 구미소방서장으로 근무하던 1986년 한 화재 현장을 지휘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목숨을 잃었다. 과로사였다. 당시 이 내정자의 부친은 정년을 2년 남겨 두고 있었다. 서장직을 맡고 있어 무리를 할 필요도 없었다. 아버지가 초대 서장을 지낸 대구 동부소방서에 이 내정자가 8기 서장으로 부임하기도 했다. 이 내정자는 매년 부친의 위패가 있는 충남 천안시 중앙소방학교 소방충혼탑에서 ‘이극의’라는 부친의 이름을 보며 소방관의 운명을 되새긴다.
한양대 체육과를 졸업해 다른 일을 하려던 아들도 등을 떠밀어 소방관을 시켰다. 아들은 지난해부터 강원도 진부119안전센터에서 말단 소방사로 근무 중이다. 이른바 ‘3대 소방관’ 가문이다. 체육을 전공한 아들에게 소방관의 길을 권했을 정도로 그는 ‘뼛속까지 소방맨’이었다. 이 내정자는 “30여 년간 소방관으로 살아온 데 긍지가 있어 망설이는 아들에게도 대를 이으라고 열심히 권했다”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 소식을 들었으면 무척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위험한 일이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최일선에서 지킨다는 긍지가 없다면 하지 못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내정자는 소방간부후보생 2기로 첫발을 디뎠다. 이후 대구시 중부와 서부 소방서장을 거쳐 부산시 소방본부장, 소방방재청 소방정책국장,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부하직원에게 권한을 주고 책임도 묻는 선 굵은 야전지휘관 스타일이다.
그는 최근 류충 충북 음성소방서장이 박연수 전 소방방재청장의 업무 스타일을 공개 비판해 조직이 뒤숭숭한 상황 속에서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박 전 청장과 소방 분야 개혁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박 전 청장의 개혁 정책에 공감하고 지지했다는 게 방재청 내부의 정설이다.
후배를 위해 용단을 내렸던 그는 22일 현직 소방관 출신으로 첫 소방방재청장이 된다. 2004년 소방방재청 출범 이래 처음이다. 최성룡 3대 청장도 소방관 출신이지만 퇴직한 후 청장이 됐다.
이 내정자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만큼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여건도 세세히 파악하고 있다. 일선 소방관들은 이 내정자가 인력 부족, 낮은 수당, 열악한 장비 등의 문제를 크게 개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내정자는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기 위해 위험한 곳에 뛰어들다 다치는 부하를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며 “국민의 생명과 소방관의 안전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겠다”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고층 건물 화재,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사고가 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그는 “대형 재난일수록 예방이 중요하지만 방재청만으로는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며 “국민께서도 대형 재난사고에 관심을 갖고 예방대책에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 이기환 소방방재청장 내정자 △대구(56세) △영남고 △한국방송통신대 △경북대 행정대학원 석사 △대구대 행정학 박사 △부산시 소방본부장 △소방정책국장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 △소방방재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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