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10시경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강원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산사태 사고현장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소양강댐으로 향하는 2차로 도로는 40∼50cm 두께의 진흙으로 뒤덮여 사람의 통행이 불가능했다. 구조대원들은 파괴된 펜션과 도로에서 추가 매몰자를 찾느라 분주했다. 산사태 피해를 본 5채의 건물 가운데 2채는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갔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2층 구조의 민박집에는 초등학생을 위한 과학 봉사 활동 중이던 인하대 과학동아리 ‘아이디어뱅크’ 학생 35명이 묵고 있었다. 산사태가 나면서 순식간에 토사가 1층을 휩쓴 데다 학생 대부분이 취침 중이어서 인명 피해가 커졌다. 당시 1층에는 학생 20여 명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행히 2층에 묵고 있던 학생들은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이날 사고로 친구와 선후배를 한꺼번에 잃은 ‘아이디어뱅크’ 동아리 학생들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하루 종일 슬픔에 빠졌다. 아이디어뱅크 회원인 김유림 씨(21·중국어중국학 2년)는 “지난주에 중국 연수를 다녀오는 바람에 이번 발명 캠프에 참가하지 못했다”며 “평소 따뜻한 마음으로 지도를 아끼지 않았던 오빠들이 사고를 당해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동아리 회원으로 현재 군 복무 중인 신동규 씨(21)는 “휴가를 나와 어제 동아리 형과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했는데 오늘 사고 사망자 명단에 형의 이름이 있었다”며 비통해했다. 이날 변을 당한 신슬기 씨(22·여)의 가족들도 강원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울음을 터뜨렸다. 신 씨의 언니 가희 씨는 “뉴스를 보고 사고 소식을 처음 알고 급히 오는 도중에 (사망자 명단에서) 동생 이름을 확인했다”며 “(동생이) 입학해 처음 맞은 방학을 뜻있게 보내려고 했는데 이런 변을 당했다”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참변을 당한 동아리 ‘아이디어뱅크’는 생활 속의 불편들을 아이디어로 개선해 소비적이고 향락적으로 변해가는 대학생활을 바꾸자는 취지에서 1987년에 만들어졌다. 매년 여름방학 때 2박 3일 또는 3박 4일 일정으로 초중고생들을 위한 발명캠프도 열고 있다. 이번에도 25∼28일 3박 4일 일정으로 춘천의 상천초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체험 봉사활동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유가족들은 “오후 2시경에야 사고 연락을 받았다”며 학교 측의 처사를 문제 삼았다. 또 사고가 난 펜션 건축의 적법성 여부를 제기하며 직접 사고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인하대는 대학본관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봉사활동 중에 유명을 달리한 학생들의 넋을 위로했다. 또 사상자들에 대한 보상과 진료비 지원 등에 대한 법률검토와 함께 학교장(葬)으로 장례를 치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편 일부 여행객은 사고 현장의 다른 펜션에 묵고 있다가 지인의 대피 연락을 받고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영철 씨(51)는 1차 산사태가 발생하자 펜션에 묵고 있던 김동수 씨(58·경기 수원시 정자동)에게 전화를 걸어 “산사태가 났으니 빨리 대피하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씨 일행 6명은 펜션을 나섰고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라며 “몇 초만 늦었어도 큰 변을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정진욱 기자 coolj@donga.com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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