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조직폭력배의 계획은 치밀하고 놀라웠다. 인터넷에서 여성을 유혹해 부부로 신고한 뒤 이 여성 명의로 보험에 가입하고 익사사고로 꾸며 은밀히 살해하는 데는 2개월이 걸렸다. 2억 원의 보험금도 타냈다. 그의 범행은 영원히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경력 17년의 베테랑 형사인 광주 서부경찰서 강력5팀 노창성 경사(40)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2000명에 대한 목소리 추적, 4년에 걸친 노 형사의 끈질긴 추적에 ‘완전 범죄’로 끝나는 듯했던 그의 ‘살인의 추억’은 결국 쇠고랑으로 결말이 났다.
○ 집념의 수사
2007년 6월 19, 20일 이틀간 전남 나주소방서와 나주경찰서에 각각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건 남자는 “나주시 남평읍 지석강변에서 투망질로 고기를 잡던 중 승용차가 물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강물에 빠진 차와 차 안에 김모 씨(당시 26세·여)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부검을 통해 사인이 익사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사고 현장의 정황을 알려줄 신고자는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김 씨가 운전 미숙으로 강에 빠져 숨진 것으로 같은 해 8월 사건을 종결했다.
노 경사가 이 사건을 주목한 것은 두 달 후인 10월. 당시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 조직폭력팀에 근무하던 노 경사는 ‘숨진 김 씨의 남편 박모 씨(30)가 거액의 보험금을 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 사건을 은밀히 추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초 신고자를 찾지 못해 수사는 벽에 부닥친 채 중단되고 말았다.
단순 사고사로 묻힐 뻔한 이 사건은 올 1월 광주서부서가 보험사기 사건을 수사하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숨진 김 씨의 남편이자 ‘광주 S파’의 조직폭력배인 박 씨가 사망보험금 2억 원을 수령한 사실을 확인했던 것. 하지만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찾지 못했던 경찰 수사는 최근 “당시 신고자가 남편 박 씨와 가깝게 지내온 조폭 양모 씨(30)인 것 같다”는 제보를 계기로 급진전했다.
노 경사는 김태철 강력5팀장(48·경위)을 비롯한 팀원들과 함께 박 씨의 휴대전화 통화자 2000여 명 가운데 50명을 추려내 4년 전 신고자의 목소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박 씨의 친구이자 조폭인 양 씨로 확인됐다. 경찰은 양 씨로부터 ”교도소 동기인 박 씨가 800만 원을 주며 119신고를 부탁해 그대로 했을 뿐”이라는 진술도 확보했다.
○ 영화보다 더 치밀한 범행
경찰 조사 결과 박 씨의 범행 수법은 흡사 영화를 방불케 했다. 박 씨는 처음부터 보험금을 노리고 살해 대상자를 물색해 결혼까지 했던 것.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범행 두 달여 전인 2007년 4월 중순 ‘딸을 키워 줄 보모를 구한다’는 광고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숨진 김 씨는 이 광고를 보고 연락을 해 왔다. 박 씨는 김 씨에게 “함께 살아주면 생활비와 임신 3개월째인 아이도 보살펴주겠다”고 속여 같은 해 5월 혼인신고까지 했다. 이후 박 씨는 김 씨 몰래 3개 보험사에 김 씨 명의로 보험에 가입했다.
박 씨가 가입한 보험 중 하나는 휴일에 사망하면 1억 원의 보험금을 더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이 때문에 박 씨는 현충일인 6월 6일 김 씨에게 “운전연수를 시켜 주겠다”며 강가로 유인해 범행을 저질렀다. 신고는 13일 후인 19일 했지만 박 씨가 아내의 실종신고를 6일에 했기 때문에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박 씨는 보험금 4억4000만 원 중 교통사고보험금 2억 원을 수령했다. 임신 중이던 김 씨의 아기도 이때 함께 숨졌다.
광주서부서 국승인 형사과장은 “박 씨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위장결혼을 하고 사고로 위장해 살인까지 한 철면피 범인”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28일 박 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하고 양 씨를 살인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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