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 산사태 피해를 입은 서울 방배동 전원마을에서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1일 수해 복구 작업을 마치고 이들의 도움을 받은 홍순만 씨와 함께 찍은 사진. 최대림 중위 제공
3일 서울 남태령 육군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정훈참모실 탁자에는 앨범 15권이 쌓여 있었다. 최근 산사태로 폐허가 된 서울 방배동 전원마을의 한 주민이 복구 작업을 해준 수방사 장병들에게 보낸 선물이었다. 앨범 위엔 “몸을 던져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고 맨손으로 흙을 퍼내던 그 마음에 절망을 이깁니다”라고 쓰인 편지가 놓여 있었다. 보낸 이는 홍순만, 받는 이는 최대림 중위였다. 선물이 도착한 지 이틀이 됐지만 앨범은 아직 주인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서울 서초동 우면산의 흙더미가 전원마을을 덮친 지난달 27일, 홍순만 씨(59)는 넋이 나간 눈길로 옆집을 바라봤다. 구조를 위해 투입된 수방사 장병들이 한 시신을 앞에 두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고작 생후 18개월 된 유아였다. 한 장병이 국방색 판초우의로 싼 그 시신을 두 손에 들고 방을 나섰다. 전원주택이 많은 비교적 부유한 동네지만 산사태 피해는 홍 씨처럼 저지대 지하에 사는 서민들에게 집중돼 모두 7명이 숨졌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95세 노모를 모시고 부인과 함께 사는 방 두 칸짜리 홍 씨의 집도 토사에 휩쓸렸다. 대피하느라 심장약을 챙기지 못한 홍 씨의 노모는 몇 시간 뒤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며 한 달에 150만 원 남짓 버는 홍 씨는 앞이 까마득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홍 씨에게 진흙을 뒤집어쓴 한 군인이 말을 붙여왔다.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저희가 다 해드릴게요.” 집 근처 부대인 수방사 공병단 중대장 최대림 중위(25)였다. 최 중위 등 장병 10여 명은 홍 씨 집 문을 뜯어내고 토사와 세간 살림을 밖으로 들어냈다. 홍 씨는 뭉개진 가구와 TV를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그를 위로한 건 장병들의 땀방울이었다. 온몸이 진흙범벅이 된 한 장병은 집 이곳저곳을 누비며 “할아버지, 저 토목공학과 나왔어요. 집 예쁘게 고쳐드릴게요”라며 분위기를 돋웠다.
홍 씨는 본래의 쾌활한 성격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수중에 있던 3만 원으로 알사탕을 구해와 장병들 입에 한 알씩 넣어주며 “마음 같아선 업어주고 싶은데 내가 힘이 없어”라고 했다. 환갑도 안 된 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센 홍 씨를 장병들은 ‘알사탕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최 중위는 “할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요구르트 같은 간식을 손에 쥐여 주셔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복구 작업이 계속되면서 홍 씨와 최 중위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홍 씨가 안 보일 때면 최 중위는 ‘할아버지 식사는 챙기셨어요?’, ‘곧 복구되니까 기운내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최 중위는 “부자동네인데 못사는 분들만 피해를 떠안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쓰였다”고 말했다.
3일 오후 한명성 육군수도방위사령부 공보장교가 수방사 정훈참모실에서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 주민 홍순만 씨가 장병들에게 선물한 앨범과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산사태 일주일째인 2일, 전원마을 주민들은 복구를 마친 수방사 장병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환송회를 열었다. 늘 작업현장에 있던 홍 씨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다. 환송회 후 장병들이 철수하고 나서야 홍 씨는 두 손에 큰 비닐봉투를 든 채 마을로 달려왔다. 집에서 건진 현금 30만 원으로 문방구 8곳을 돌며 앨범 15권을 사서 오는 길이었다.
“구청직원들은 얼굴만 비치고 사라지는데 아들 같은 군인들은 몸을 던져 도와주니 너무 비교가 됐어요. 어떻게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좋은 건 못 주고 군 생활 추억 잘 담아가라는 뜻에서 앨범을 골랐어요.”
홍 씨는 최 중위를 애타게 찾아 헤매다 현장에 있던 수방사 정훈공보참모인 전병규 대령에게 “꼭 좀 전해달라”며 비닐봉투를 건넸다. 그렇게 수방사까지 온 앨범 선물은 아직 전 대령의 책상에 그대로 놓여 있다. 최 중위는 “할아버지 형편이 어떤지 아는데 차마 선물을 받기가 어려웠다”며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간직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강한 인턴기자 부산대 법학과 4학년 김태원 인턴기자 한국외대 프랑스어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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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2011-08-04 17:23:44
안녕하세요~~ 저는 동아일보의 열렬한 독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동아일보를 읽었습니다. 7개월된 아이의 아버지로서 기사의 내용을 읽고서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아니 그 기사의 주인공 부모들도 화가 더욱 났을 것입니다. 저는 이때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내용을 기자 3명은 이렇게 표현했더군요.... 고작 생후 18개월 된 유아였다 이었습니다.정말 사람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고작이란 표현을 썼더군요.. 고귀한 생명체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합니다. 하지만 기자는 그런 생명의 중요성을 너무 간과하고 있었습니다.사과를 했으면 합니다.표현에 있어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으면 합니다.
2011-08-04 10:56:49
이게 우리 국군의 참 모습이지요? 밤이나 낮이나 대한민국을 북괴에 상납못해 불철주야 잔머리 굴려대며 천안함도 자작극이요, 연평도도 우리 국군탓이라 괴변으로 일관하는 종북, 간첩성 인사들은 이북으로 가서 편하게 사시던가, 가기싫으면 찬물마시고 속 좀 차리소.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동아일보를 읽었습니다. 7개월된 아이의 아버지로서 기사의 내용을 읽고서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아니 그 기사의 주인공 부모들도 화가 더욱 났을 것입니다. 저는 이때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내용을 기자 3명은 이렇게 표현했더군요.... 고작 생후 18개월 된 유아였다 이었습니다.정말 사람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고작이란 표현을 썼더군요.. 고귀한 생명체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합니다. 하지만 기자는 그런 생명의 중요성을 너무 간과하고 있었습니다.사과를 했으면 합니다.표현에 있어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으면 합니다.
2011-08-04 10:56:49
이게 우리 국군의 참 모습이지요? 밤이나 낮이나 대한민국을 북괴에 상납못해 불철주야 잔머리 굴려대며 천안함도 자작극이요, 연평도도 우리 국군탓이라 괴변으로 일관하는 종북, 간첩성 인사들은 이북으로 가서 편하게 사시던가, 가기싫으면 찬물마시고 속 좀 차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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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4 17:23:44
안녕하세요~~ 저는 동아일보의 열렬한 독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동아일보를 읽었습니다. 7개월된 아이의 아버지로서 기사의 내용을 읽고서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아니 그 기사의 주인공 부모들도 화가 더욱 났을 것입니다. 저는 이때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내용을 기자 3명은 이렇게 표현했더군요.... 고작 생후 18개월 된 유아였다 이었습니다.정말 사람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고작이란 표현을 썼더군요.. 고귀한 생명체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합니다. 하지만 기자는 그런 생명의 중요성을 너무 간과하고 있었습니다.사과를 했으면 합니다.표현에 있어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으면 합니다.
2011-08-04 10:56:49
이게 우리 국군의 참 모습이지요? 밤이나 낮이나 대한민국을 북괴에 상납못해 불철주야 잔머리 굴려대며 천안함도 자작극이요, 연평도도 우리 국군탓이라 괴변으로 일관하는 종북, 간첩성 인사들은 이북으로 가서 편하게 사시던가, 가기싫으면 찬물마시고 속 좀 차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