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지선다형 객관식 문제에서 4개의 답이 명백한 오답이고 남은 하나의 답이 다소 부정확하다면 남은 답을 정답으로 간주해야 할까요? 아니면 정답이 없는 문제로 남겨야 할까요? 2008년 10월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2009학년도 초등학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임용시험) 1차 '교육과정' 과목에는 다소 논쟁적인 문제가 나왔습니다. 모두 50문제를 풀어야 하는 이 과목에서 출제된 17번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2009학년도 서울시 초등교사 임용 1차 시험 '교육과정' 17번 문제> 다음은 '확률과 통계' 영역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제시한 설명이다. 설명이 옳은 학생을 고른 것은?
정희: 우리반 수학 시험에서 남학생 19명의 평균은 84점이고, 여학생 15명의 평균은 86점이니까 반 전체의 평균은 85점이야.
인수: 주사위 2개를 던져서 나온 두 눈의 수를 곱했을 때 짝수인 경우의 수와 홀수인 경우의 수는 같지 않아.
민지: 7일 동안 학교 식당 이용자 수의 평균은 146명이었어. 그러면 평균보다 많이 이용한 요일의 식당 이용자 수의 합과 평균보다 적게 이용한 요일의 식당 이용자 수의 합은 같아.
영수: 주사위를 던져 3의 눈이 나올 확률은 1/6이야. 그러므로 어떤 실험에서 3의 눈이 5번 나왔다면 최소한 30번은 주사위를 던진 것이 확실해.
상미: 나와 동생은 흰 공 2개와 검은 공 3개가 들어 있는 주머니에서 공을 한 개씩 뽑아 흰 공이 나오면 이기는 게임을 했어. 뽑은 공을 다시 넣지 않아도 누가 먼저 뽑든 공평한 게임이야.
① 정희, 상미 ② 인수, 민지 ③ 인수, 상미 ④ 민지, 영수 ⑤ 민지, 상미
이 문제의 정답은 몇 번일까요? 먼저 정희는 틀렸습니다. 이 반 학생들의 평균을 구하면 84.88점이 나오기 때문에 85점이 아닙니다. 민지도 틀렸습니다. 식당 이용자 수가 평균보다 많은 날이 단 하루였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지요. 영수도 틀린 얘기를 했습니다. 주사위를 5번 던졌는데 모두 3이 나왔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인수의 얘기는 맞습니다. '홀수×홀수'만 홀수 일뿐 '짝수×홀수'나 '짝수×짝수'는 모두 짝수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상미입니다. 상미의 말은 '공을 한 개씩 뽑아 흰 공이 나오면 이기는 게임'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①나와 동생이 흰 공 2개와 검은 공 3개가 들어 있는 하나의 주머니에서 공을 순서대로 한 개씩 뽑아 먼저 흰 공이 나오는 쪽이 게임에서 이기고 그 때 게임이 종료되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②나와 동생이 흰 공 2개와 검은 공 3개가 들어 있는 2개의 주머니에서 각자 공을 한 개씩 뽑아 그 결과를 비교해 흰 공이 나오는 쪽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으로 모두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①번 해석대로라면 상미는 틀렸지만 ②번 해석대로라면 상미의 말은 옳습니다.
2008년 이 임용시험에 응시했다 불합격한 국모 씨 등 29명은 당시 서울행정법원에 불합격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17번 문제는 해석하기에 따라 답이 없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해당 문항을 포함해 점수를 재산정한다면 합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였지요. 1심은 "문제가 부정확해 '정답 없음'으로 처리돼야 한다"며 국 씨 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에선 치열한 법정다툼이 벌어졌습니다. 한국통계학회와 대한수학회는 "상미의 말에 나온 게임을 ①번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정답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국수학교육학회와 한국교육평가학회는 "문제 전체 맥락을 볼 때 3번을 답으로 고르는 게 맞다"고 맞섰습니다. 결국 항소심은 "정희 민지 영수의 말은 명백히 틀렸기 때문에 1, 2, 4, 5번 답은 어느 모로 보나 정답이 될 수 없다. 평균 수준의 수험생이라면 옳은 설명이 포함된 3번을 충분히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국 씨 등에게 패소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이 사건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5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객관식 문제의 답이 미흡하거나 부정확하더라도 수험생이 정답을 선택하는데 장애를 받지 않는 정도라면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판결은 한 가지 의문점을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이 판결이 국 씨 등의 승소로 끝난다면 적게는 10여 명의 합격자가 추가로 나올 수 있습니다. 혹시 이로 인해 예상되는 교원 인사정책의 혼란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요? 특히 상미의 말을 ②번과 같이 해석해야 한다면 '뽑은 공을 다시 넣지 않아도'라는 말은 왜 지문에 들어가 있었을까요?
또 이 판결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수험생들은 오답을 철저하게 골라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입니다. 다소 모호한 답은 정답으로 간주될 수 있어도 명백한 오답은 절대로 정답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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