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여고 3학년 유지현 양(18)은 중학교 2학년이던 2007년 8월 히말라야 산맥을 등반하는 한 청소년 원정대에 지원해 선발됐다. 그리고 그해 말 인도의 오지 가르왈 지역으로 향했다. 험난한 히말라야 지역이지만 체력엔 자신 있었다. 5개월 전부터 설악산, 소백산, 팔봉산 등을 오르며 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히말라야 산맥을 향하는 길. 창밖을 바라보던 유 양의 눈에 다섯 살 남짓 한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아이는 자신의 주먹을 입에 넣으며 ‘배고프다’는 표시를 했다. 아이 앞에는 조그만 깡통이 놓여 있었다. 귀국한 뒤에도 유 양은 자신을 애절하게 쳐다보던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을 쉽게 지워낼 수 없었다.》
경북 영양여고 3학년 유지현 양은 고2 때 국제협상가가 되고 싶다는 확실한 꿈을 가진 뒤 평균 4등급이던 내신 성적을 2등급으로 끌어올렸다.
“굶주린 아이들을 도울 방법이 있는지 인터넷을 뒤져봤어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소속 국제협상가가 하는 일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그들은 식량이 풍부한 선진국과 협상해 굶주리는 나라들에 더 많은 식량을 지원토록 하는 일을 하고 있었죠. 처음으로 뭔가가 간절히 되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어요. 바로 FAO 소속 국제협상가가 되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유 양의 성적은 평균 80점대 초반. 반 30여 명 중 15등 내외였다. ‘이 성적으로 어떻게 국제기구에 들어가겠어….’ 공부는 뒷전이었던 자신이 문득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의 꿈도 머릿속에서 흐릿해져만 갔다.
○나 홀로 도전을 시작하다
중학교를 졸업한 유 양은 기숙형 자율고인 경북 영양여고에 진학했다. 집(경기 용인)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공부에 매진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학교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오전 6시 반에 일어나 학교수업과 자율학습을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오면 자정이 훌쩍 넘었다. 수업 분위기도 중학교 때와는 딴판이었다. 수업시간에 다른 짓을 하는 학생이 없었다. 자율학습 시간에도 모두 졸지 않고 공부에 전념했다.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여기서 잘해 낼 수 있을까.’
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집에 다녀오는 길. 유 양은 가방에서 어머니가 쓴 쪽지를 발견했다. ‘네가 원해서 간 학교지만 집이 많이 그리울 거야. 그래도 잘해 내리라 믿어!’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공부해보자.’ 유 양은 1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를 2주 남기고 사회, 과학 등 암기과목을 집중 공략했다. 교과서에 나온 △목차 △단원의 제목 △본문 내용 △예제는 공책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일주일 전에는 국어 영어 교과서를 4, 5회씩 반복해 읽었다. 오전 2시까지 공부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1학기 성적은? 국어 3등급, 영어·수학 4등급, 사회는 6등급이었다. ‘내 실력이 겨우 이 정도구나….’ 고2가 되어서도 성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수학은 5등급까지 떨어졌다.
“마침 큰 장벽을 앞에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내가 이 먼 곳까지 와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더라고요.”(유 양)
○잊혀진 꿈이 되살아나다
고2 겨울방학. 슬럼프에 빠져 있던 유 양을 지켜보던 한 친구가 ‘프린세스 라 브라바!’라는 책을 추천해줬다. 미국에서 역경을 딛고 성공한 한국여성 여덟 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그 중 유 양은 유엔에서 행정직원으로 일하는 정한나 씨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장벽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장벽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이 가슴 한복판에 와 꽂혔다.
잊혀졌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바로 FAO에서 일하는 국제협상가가 되고 싶다는 꿈. 공부를 해야 할 절실한 이유를 유 양이 찾게 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비효율적인 학습방법이 문제였다. 그는 교육방송(EBS)에 효과적인 수학학습법으로 소개된 ‘교과서 횡단학습법’을 따라해 보았다.
횡단학습법이란 중1∼고3 교과서에 나오는 수학개념 중 연관된 개념을 모두 모아 한꺼번에 공부하는 방식. 예를 들어 △중1 일차방정식 △중2 연립방정식 △중3 이차방정식 △고1 삼차방정식을 하나로 묶어 방정식을 공부하는 것이다. 유 양은 △수와 연산 △도형 △확률과 통계 △미적분 단원으로 나눈 뒤 각각 공책을 만들어 횡단학습에 들어갔다. 무작정 문제만 풀던 과거와 달리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문제를 푸니 ‘이제야 진짜 내 실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력의 결과는 정직했다. 고3 1학기 국어·영어·사회과목에서 2등급을 받은 것. 수학은 3등급으로 뛰어올랐다. 전교 95명 중 7등.
대학입시를 앞둔 유 양의 1차 목표는 서울 주요대학의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는 것이다. 정치외교학과에서 국가 간 외교를 배워두면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혹여 정치외교학과에 못 가더라도 국제협상가가 되기 위한 도전을 계속할 거예요. 인도에서 봤던 아이들이 저로 인해 배부르게 먹게 된다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간절히 바라다 보면 꿈을 이루는 날이 꼭 오지 않을까요(웃음)?”(유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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