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박모 씨(37)는 방 안에 놓인 캠핑 장비만 보면 ‘비’가 생각난다. 지난달 중순 장마가 끝난 후 박 씨는 두 딸과 캠핑을 가기 위해 고가의 텐트를 마련했지만 주말마다 비가 내려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비가 너무 자주 오다 보니 여름철 더위도, 캠핑 가는 재미도 제대로 못 느꼈다”고 말했다. 실제 올여름에는 강한 무더위 없이 기나긴 ‘비의 터널’을 거치며 입추(立秋·8일)를 맞았다.
○ 삼우일청(三雨一晴)
올여름에는 장마와 폭우가 계속되면서 전국 대다수 지역에서 역대 최다 강수량 기록이 경신됐다. 동아일보가 기상청과 함께 장마가 시작된 6월 22일부터 8월 10일(총 50일)까지 기상관측소가 설치된 전국 32곳의 누적강수량을 분석한 결과 18곳(56%)에서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은 이 기간 중 무려 76%인 38일이나 비가 내렸다. 비가 한 번 내리면 일주일씩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6월 22일 시작된 비는 같은 달 30일까지 9일 연속 내렸다. 지난달 7일 시작된 비도 11일간 이어졌다. 50일 동안 서울에는 1608.8mm의 비가 내려 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후 104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다른 지역도 비슷했다. 인천에는 이 기간 중 1265.5mm의 비가 내렸다. 연평균 강수량(1234.4mm)이 50일 만에 다 채워진 셈이다. 천안은 평년 강수량(422.6mm)보다 3.9배나 많은 1666.6mm의 비가 내렸다. 대구 역시 32일간 731.7mm의 비가 내려 역대 1위 기록을 경신했다.
여름 내내 비가 내린 이유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여름철 정상적인 북태평양 고기압은 중국까지 확장하며 한반도를 덮는데 올해는 제대로 확장하지 못해 가장자리가 한반도에 머물면서 대기가 불안해졌다. 그러면서 북쪽의 찬 공기와 따듯하고 습한 공기가 만나 한반도 상공에 좁은 수증기 통로가 만들어졌다. 제5호 태풍 메아리와 제9호 태풍 무이파도 많은 비를 뿌렸다. 온난화로 지구 기온이 올라간 것도 원인으로 꼽혔다. ○ 비옷-장화가 패션아이템
시민들의 생활·소비패턴도 변했다. 주부 김소영 씨(29)는 “비 때문에 빨래만 하면 냄새가 나다 보니 빨래 건조기와 제습제를 장만했다”며 “다만 아이들 외출비용은 줄었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태환 씨(37)는 “비 오는 날이 많아 버스보다는 택시나 자가용을 자주 이용한다”며 “작년보다 교통비가 2배는 늘었다”고 말했다 우의와 장화는 장마철뿐 아니라 여름 내내 사용되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 패션아이템이 됐다.
비가 ‘자주’, ‘많이’ 내리다 보니 관련 유행어까지 생겼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사랑비(노래 제목)가 아닌 오늘비”, “月火水木비비비”, “비비비해비비비”, “여름비천가”와 같은 말이 오르내린다. 줄기차게 내리는 여름철 비로 스트레스가 크게 늘었다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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