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약가 정책이 시행되면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은 줄어든다. 간염치료제 헵세라정(100mg)을 1년간 복용하는 환자의 경우 전체 약값이 210만 원에서 141만 원으로 줄어든다. 본인부담금은 63만 원에서 42만 원으로 21만 원이 절약된다.
그러나 제약업체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반발을 예견했다. 그런데도 이런 처방을 내린 것은 약가부터 잡아야 건강보험을 살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신약 개발보다는 영업에 의존해온 국내 제약업체들을 그대로 두면 제약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판단도 이번 정책이 나온 배경이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약품비 거품을 제거해 국민부담을 줄이고 후진적인 국내 제약산업을 연구개발(R&D) 중심으로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정책 추진 적기”라고 말했다.
○ 정부 “건강보험 안정 위해 불가피”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 적자는 1조3000억 원. 2015년에는 5조79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2, 3년 안에 건보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는 것. 건보 재정 불안은 지나치게 높은 약값 탓도 상당하다는 게 복지부 분석이다. 구매력 지수를 기준으로 국내 약가는 노르웨이 스페인 스웨덴 등 선진 16개국보다 높다. 지난해 건강보험 지출 가운데 약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29.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4.3%보다 1.6배 높다. 새 약가제도가 시행되면 환자 본인부담 6000억 원, 건강보험 재정 1조5000억 원 등 모두 2조1000억 원이 절감될 것이라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건보 지출에서 약가 비중도 24%로 낮아진다.
○ 정부, 제약업계 옥석 가린다.
이번 정책에는 ‘똘똘한 제약사’ 위주로 국내 제약업계를 재편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정부는 복제 약값이 높게 책정된 탓에 제약사들은 고만고만한 약을 만들어놓고 리베이트를 뿌리며 판매 경쟁을 벌였다고 보고 있다. 제약사의 판매관리비 비중은 35.6%로 제조업체 평균의 3배에 달한다. 국내 제약업계 1위인 동아제약도 지난해 R&D에는 654억 원을 들인 반면 판매관리비로 전체 매출액(8468억 원)의 절반 가까운 4027억 원을 썼다.
국내 제약사 256곳 가운데 신약을 개발한 곳은 10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복지부는 앞으로 R&D에 적극 투자하는 회사를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해 복제약가를 우대하고 법인세를 50% 감면해줄 계획이다.
○ 제약업계 “국내 제약사 다 망한다”
제약업계는 “제약회사는 아예 죽으라는 것”이라며 저항하고 있다. 이날 오전 대웅제약 이종욱 사장, 유한양행 김윤섭 사장 등 제약사 임직원 100여 명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제약회관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제약사 관계자는 “100년이 넘는 한국 제약업계 역사에서 각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모여 시위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국내 전체 제약 시장 규모는 13조 원. 업계에서는 약가 인하가 시행되면 연간 2조2800억 원의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회사마다 평균 약 16%의 매출이 단숨에 줄게 되는 것. 제약업계는 “현재 진행 중인 기등재의약품 약가 인하로 8900억 원, 시장형실거래가제로 5000억∼9500억 원의 매출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여기서 매출이 더 줄면 R&D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질 것”이라고 반발했다. “8만 제약인 중 2만 명의 실직자가 생기는 ‘해고 사태’를 불러올 것”이라는 게 제약업계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제약업계는 헌법소원과 행정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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