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시장직 사퇴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퇴 문제에 대해 “결심이 선다면 선거 전에 태도를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오 시장은 사퇴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과 측근들 사이에는 ‘주민투표에 패할 경우 식물시장이 돼 더는 시정을 운영하기 어렵다.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미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한 만큼 시장직 사퇴 외에는 마땅한 카드가 없는 실정이다. 대선 불출마는 그가 언급한 정치적 책임과 직접 연결시키기는 데 한계가 있다.
오 시장이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이 주민투표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한 ‘2단계 충격파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대선 불출마 카드로 이목을 집중시킨 뒤 개표가 가능한 투표율(33.3%)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면 17일 전후에 사퇴 선언으로 다시 한 번 이슈를 만드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불출마 선언 자체가 ‘정치적 다걸기(올인)가 아니라 반(半)걸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오 시장 스스로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사퇴 선언을 하더라도 막판에 해야 한다”며 “시장직을 걸겠다고 하면 유권자들이 관심을 더 갖게 돼 투표율이 5%포인트 이상 올라가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개표가 이뤄지려면 서울시 유권자 836만 명의 33.3%인 278만6000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다만 여권이 그의 시장직 걸기에 반대하는 것은 변수로 남는다. 여권은 그가 사퇴해 치러지는 10월 보궐선거에서 야당에 패할 경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큰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내년 수도권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고전할 가능성이 높아 서울지역 의원들은 오 시장의 사퇴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전날 오 시장과의 통화에서 “대선 출마를 포기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로서 (오 시장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시장 직을 사퇴하는 것은 당 전체와 관련된 사안으로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오 시장은 이날 시장직 사퇴에 대해 “결심이 서면 당을 설득하겠다”고 말해 강행 의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오 시장의 이날 기자회견 내용을 놓고 ‘주민투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사퇴 카드를 쓸 수 있으니 확실하게 지원해 달라’는 압박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 시장의 대선 불출마 카드가 ‘정치적 묘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박근혜 대세론이 불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인 그가 시장직을 던지고 경선에 나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주민투표 흥행을 위해 불출마 카드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해석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후보 경선 라이벌로 부상하는 것을 경계했던 친박계를 안심시키면서 여권 전체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 내려는 다목적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서 오 시장 지지층은 주민투표 참여 의지가 강한 반면 박 전 대표 지지층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높지 않았다.
대선 불출마가 여러 가지 정치적 해석을 낳자 여권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대선 불출마와 시장직 사퇴 카드를 분리해 쓰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 시장은 진정성을 강조하지만 정치적 노림수로 비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초선의원은 “대선 불출마가 정치권의 관심사일지 몰라도 주민투표를 앞둔 서울시민의 관심사는 아니지 않으냐”며 “정치적 이벤트 성격이 짙어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도 이날 선언을 놓고 “‘오 시장의’ ‘오 시장에 의한’ ‘오 시장을 위한’ 투표”라고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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