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가지 않아도 돼.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도 결과는 분명 달라질 거야.” 서울 경복여고 3학년 안소현 양(18·사진)이 고등학교 2학년 진학 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중학교 시절 안 양은 전교 20등 안에 드는 성적으로 비교적 ‘평탄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고교진학과 함께 실패를 경험했다. ‘외고 입학 좌절’ ‘첫 시험 성적 대폭 하락’…. 조급해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천천히 가되 조금씩은 나아갔다.》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 받아본 성적표를 보면 대부분 3등급이었어요. 그때는 등급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건지 제 성적이 ‘절망적’이라기보다는 ‘무난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학년에 올라가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입시상담을 받고 나니 정신이 퍼뜩 들더라고요. 마음을 독하게 먹었습니다.”
○ 메모하며 쌓인 노트,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다
안 양이 취한 특단의 조취는 ‘학원 끊기’. 학원에만 의지해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았고, 학원에서도 출석에만 의의를 두는 악순환이었음을 깨달았다. 답답한 마음에 교육관련 기사를 마구 찾아봤다. 그러던 중 또래 학생들 사이에 ‘자기주도 학습’이 화두란 사실을 알고 이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방법이라 생각했다.
학교수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쑥스럽다는 이유로 하지 않던 질문을 드디어 하기 시작했다. 시간기록기를 활용해 공부하는 습관도 들였다. 하루 동안 학습한 시간을 알 수 있어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정해 단어 외우기에도 도전했다. 좋은 자극을 주고받는 선의의 경쟁자가 생기자 공부의지가 더욱 강해졌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2학년 때 성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더니 3학년이 된 후로는 국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다.
안 양의 성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토대는 바로 ‘메모광’으로의 변신이다. 수업시간에 지나치게 꼼꼼하게 필기를 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단하게 핵심만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 것에 집중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 간략하게 수첩에 기록했다. 그것을 다시 질문할 수 있는 문항으로 정리하면서 모르는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갔다. 이러다 보니 안 양의 수첩에는 각종 메모와 단상, 낙서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이젠 수첩만 봐도 그때의 생각과 공부했던 내용이 모두 떠오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수첩은 늘 가지고 다녀요. 친구들이 제 수첩이 바뀐 것까지 알아차릴 정도죠. 그렇게 모인 수첩이 벌써 10권이 넘는 걸 보면 뿌듯한 마음이에요.”
○ 학생회 활동, ‘공부와 꿈’ 한 번에 잡다
안 양이 이처럼 의욕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건 학생회 참여의 영향도 크다. 미처 몰랐던 자신의 적성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학생회 선배들의 모습이 마냥 멋있어 보여 시작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안 양은 꿈을 찾았다.
“학생회 활동을 하며 처음으로 여름방학 축제에서 가요제를 맡았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축제 때 사용할 영상을 직접 제작했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내가 이런 분야에 소질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후로 막연하게 생각했던 방송이나 언론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평소에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는 편이라 궁극적으로는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다는 꿈을 세웠습니다.”
안 양의 꿈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던 건 다른 나라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1, 2학년 겨울방학 때 경복여고와 자매교를 맺은 중국 하얼빈의 조선제일중학교, 일본의 아사히가와 고등학교 학생들과 교류한 것. 다른 나라 학생들임에도 한국의 드라마, 음악 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안 양에게 새로운 자극이 됐다.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였다.
“혼자서 하는 일보다 때론 벽에 부닥치더라도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일이 즐거워요. 이런 요소를 잘 살려 방송인으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요. 그렇게 해서 세운 다음 목표는 ‘신문방송학과 진학’입니다.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전략이라면 절 배신하지 않을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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