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교통 시대로]<2>굿 바이 마이카, ‘카마게돈’의 종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8일 03시 00분


“자동차 없앴을 뿐인데… 출산이 늘었어요”

오스트리아 빈 플로리츠도르프 지역의 ‘차 없는 마을’은 주차장이 아니라 나무가 우거진 길과 어린이 놀이터로 시작한다. 주민들은 자가용 대신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이동한다. 빈=박용 기자 parky@donga.com
오스트리아 빈 플로리츠도르프 지역의 ‘차 없는 마을’은 주차장이 아니라 나무가 우거진 길과 어린이 놀이터로 시작한다. 주민들은 자가용 대신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이동한다. 빈=박용 기자 parky@donga.com
《 오스트리아 빈 도심에서 9km 정도 떨어진 플로리츠도르프 지역. 현역으로 오스트리아군(軍)에 복무 중인 볼프강 파르니가니 대령(55)은 매일 오전 7시경 이곳 자택을 출발해 오토바이 또는 트램(지상전차)을 타고 남쪽 마이들링의 군부대로 출근한다. 교통 체증이 심해 자동차로는 꼬박 40∼50분이 걸리는 거리다. 하지만 오토바이로는 30분이면 갈 수 있다. 그는 20년 이상 타오던 승용차를 10년 전 없앴다. 파르니가니 대령은 “차 없이 사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다”며 “통근시간과 불필요한 차량 운영비를 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나 홀로 자가용’은 공공의 적

유럽의 도시들이 ‘마이 카 드림’에서 깨어나고 있다. 최근 자가용이 급증한 유럽에서는 극심한 교통 체증 때문에 ‘카마게돈(카+아마게돈)’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구시가지가 많고 길이 좁은 유럽 도시에서 자가용은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의 도시들은 대중교통 투자를 늘려 자가용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풀(pull)’ 전략과 자가용의 도심통행 부담을 높여 운행을 단념하게 만드는 ‘푸시(push)’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유류세로는 자가용의 운행 시간과 장소까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의 도심 혼잡통행료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밀라노는 오염물질 배출량에 따라 도심 통행료를 무겁게 매기는 정책까지 마련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가격 상승에 적응하려면 자가용 통행 수요관리가 불가피하다는 게 그 이유다.

이 결과 도심에서 자가용이 설 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 시의회는 올해 초 ‘오스트리아 최대의 쇼핑가’로 꼽히는 마리아힐페르 거리의 차량통행을 2013년부터 제한하는 방안을 내놔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수요관리에 성공하려면 △공평한 요금 부과체계 △통행료 수입의 교통 인프라 재투자 △교통, 주거, 지역경제를 고려한 정책 수립 △편리한 대중교통 △지속적인 홍보와 설득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차 없애니 커뮤니티 살고 출산도 늘어 ”

유럽 도시들은 1990년대부터 차 없는 마을, ‘카 프리 존’이라는 새로운 주거방식도 실험하고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보방,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흐로닝언, 오스트리아 빈, 영국 에든버러가 대표적이다.

파르니가니 대령이 1999년부터 살고 있는 빈 플로리츠도르프의 주택단지도 ‘차 없는 마을’이다. 244가구에 7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차를 가진 주민은 없다. 입주하려면 차를 갖지 않겠다고 서약해야 한다. 그래도 대기 순번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입주신청이 넘친다. 이 주택단지의 입구는 주차장이 아니라 어린이 놀이터와 공원으로 시작해 연못으로 이어진다.

건물 지하에 주차장이 있긴 하다. 취재팀이 찾아간 지난달 말 이곳에 주차된 차는 딱 1대였다. 그것도 주민들이 필요할 때 회원제로 가입해 공동으로 돌려쓰는 ‘자동차공유(Car sharing)’ 차량이다. 나머지 공간에는 주민들의 자전거 500대가 주차돼 있다. 전 주민의 55%가 자전거를 이용한다. 파르니가니 대령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주민들끼리 접촉이 잦아졌고 지역 커뮤니티가 살아났다”며 “차 없는 마을로 이사를 와서 친구가 두세 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플로리츠도르프의 차 없는 마을 개발을 기획한 크리스트퍼 코어헤어 전 오스트리아 녹색당 당수는 “차 없는 마을에 아이들이 네다섯 명씩 있는 가구가 적지 않은데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게 원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 70년 된 제도 뜯어 고쳐

빈 시 당국은 ‘카 프리 존’ 실험을 위해 1930년대부터 시행된 가구당 주차장 의무 확보 제도부터 손질했다. 차가 없으니 주차장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차장 규모를 대폭 줄이자 건설비가 약 9%(약 250만 달러) 줄였다. 이 돈과 공간으로 자전거 주차장, 주민들이 함께 일하는 공방, 헬스클럽, 아이들 놀이방, 주민 모임 공간, 사우나 시설을 지었다. 빈 시에는 현재 주차장을 없애고 수영장을 짓는 식의 제2, 3의 카 프리 존 건설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코어헤어 씨는 “낡은 규제, 부동산개발업자와 여론의 회의적 시각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설명했다.

카 프리 존 전문가인 스티브 멜리아 영국 웨스트오브잉글랜드대 선임강사(교통계획 전공)는 “인구 20만 명 이상의 대도시 도심, 대중교통 네트워크가 발달된 지역, 도보로 기본적인 생활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에서 카 프리 존의 수요가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빈·런던=박용 기자 parky@donga.com  
▼ 한국도 실험중… 대구 중앙로, 국내 첫 승용차 통금 ▼


한국에서도 대중교통 전용지구와 자동차 공유서비스 등 ‘카 프리’ 시대를 대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대구시는 국내 최초로 2009년 12월 번화가인 중앙로를 대중교통 전용지구로 지정하고 승용차 통행을 금지했다. 지구 지정 이후 중앙로의 시내버스 이용객과 유동인구가 각각 22.9%, 17.7% 늘고 이산화질소는 54% 감소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손님이 줄고 물건을 실어 나르기 불편하다”거나 “버스 운행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야간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상인과 시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대구시는 상인과 시민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자전거 및 오토바이 통행을 허용하고 버스의 정시 운행을 위해 불법 주정차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오토바이의 무분별한 난입, 주변지역 교통체증 등은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경기 군포시에서는 2009년 10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승용차를 공동 소유하고 타는 만큼 요금을 내는 자동차 공유 서비스가 국내 최초로 등장했다. 하지만 관련 지원 제도가 없는 데다 일정 수 이상의 이용자도 확보하지 못해 올해 2월 중단됐다.

송기혁 기자 kh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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