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던 아이, 앞으로의 목표가 없었던 아이,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반에 있는 듯 없는 듯했던 아이. 인천 박문여고 2학년 조인정 양(17·사진)의 중학교 1학년 시절 모습이다. 조 양이 조금씩 달라진 건 중2 때부터. 외국어고 입시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전교 1등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된 조 양은 목표가 뚜렷하고 매사에 당당한 친구와 자신이 비교됐다. 꿈도 목표도 없는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뒤지기 싫어 학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중3이 된 후로는 어머니의 추천으로 알게 된 ‘박문여고 국제반’에 들어가겠다는 뚜렷한 목표까지 생겼다.》
지난해 조 양은 박문여고에 입학한 뒤 목표로 했던 국제반에 지원해 합격했다. 하지만 만족하기는 일렀다. 미국 아이비리그, 서울 상위권 대학 진학 등 각자 원대한 꿈을 안고 모인 학생이 총 31명. 그 속에서 조 양은 30등으로 입학했다. 중위권에서 이만큼 올라온 것도 큰 성과이지만 안주할 수는 없었다. ‘공부는 하는 만큼 돌아온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은 이상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 무거운 엉덩이 믿고 기른 뚝심
조 양은 앳된 목소리가 주는 첫 느낌과는 달리 스스로에게 독하다 싶을 만큼 엄격한 구석이 있다. 계획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각오다. ‘오전 6시 반 기상, 오전 1시 전 취침’을 원칙으로 삼고, 눈을 뜨고 있는 시간만큼은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한다. 통학버스 안이라고 해도 결코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법이 없다. 다른 친구들이 자고 있는 동안에도 영어단어 50개씩을 외운다. 여기까지가 준비운동이었다면 본격적인 일과는 학교에 도착한 후부터 시작된다.
자리에 앉자마자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오늘의 할 일’ 목록을 정리한다. 매일 숙제로 주어지는 교과서 풀이, 국·영·수 주요과목에 대한 공부 분량은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시험기간이 아닐 때는 영어단어를 외우고 수학문제를 푸는 시간을 늘린다. 모의고사가 다가오면 기출문제 1회분을 꼼꼼히 푸는 것으로 대비한다. 학기 초인 3월, 노는 날이 많은 5월, 시험이 끝나는 7월 등 어수선한 시기에도 이런 일과는 변함이 없다.
“지난번 기말고사가 끝나고 어머니와 월미도에 다녀왔어요. 오랜만에 바람을 쐬면서 기분전환을 했습니다. 그날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장 책을 펼쳤어요. 매일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공부를 안 하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조 양은 일단 공부에 열중하면 다른 곳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정해둔 분량을 소화하는 동안에는 전화나 문자메시지에도 잘 응답하지 않기 때문에 통화가 쉽지 않을 정도다. 그날 세운 계획은 그날 안에 끝내는 게 힘들어도 도리어 자신을 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완벽하게 소화하면 목록에서 지우고 애매하게 끝낸 건 세모로 표시해둡니다. 나중에 계획표를 봤을 때 세모가 많으면 스스로 창피해져요. 괜히 다음 날 더 빡빡하게 일정을 잡게 되더라고요. 저도 이런 제가 집요하게 느껴지기도 해요(웃음).”
○ 나와의 약속 지키니 친구 신뢰도 따라와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습관이 조 양에게 가져다준 것은 성적 향상만이 아니었다. 친구의 신뢰까지 덤으로 얻었다. 조 양은 고등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공부하는 모습이 조금씩 친구들 눈에 띄기 시작했고, 2학년이 된 후 전교 3등으로 성적이 수직상승하자 친구들의 관심이 늘어났다. “좀 쉬면서 해”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열심히 하는 모습 지켜보겠다”는 선생님도 생겼다.
친구들의 지지를 받아 지난 학기에는 방송에 관심 있는 이들로 이루어진 동아리 ‘혜윰’(‘생각’이란 뜻의 순우리말)을 만들었다. 이 역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평소 방송 쪽에 관심이 많던 조 양은 1학년 때 비슷한 꿈을 가진 친구들 앞에서 “동아리를 만들자”고 말했다. 그때의 계획을 늦게나마 이루게 된 것. 마침 어머니 후배 중 한 명이 지상파 방송국 PD로 활동하고 있어 이번 방학 때 친구들과 방송국도 탐방했다.
“동아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던 걸 친구들은 잊지 않았고 저를 믿어줬습니다. 덕분에 꿈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공부 외에 동아리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꾸준히 열심히 하다보면 꿈이 이뤄진다는 걸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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