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혼부모 잇단 사고死 주변엔 딸의 그림자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4일 03시 00분


어느 날 20여 년 만에 나타난 딸. 그리고 이어진 부모의 죽음. 사고사로 결론 낸 경찰과 잠적한 딸. 의문을 품은 한 경찰관의 집요한 추적.

경찰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미스터리 사건을 다시 파헤친 끝에 딸을 유력한 사건 용의자로 지목하고 추적에 나섰다.

지난해 9월 서울 강북구에 사는 박모 씨(52·여) 집에 딸 장모 씨(32)가 자신이 낳은 딸을 데리고 찾아왔다. 박 씨는 남편 장모 씨(57)와 20여 년 전 이혼하고 친척집에 딸을 맡긴 후 20여 년간 거의 찾지 않았다. 술잔을 기울인 반가운 만남도 잠시. 박 씨는 딸이 찾아온 그날 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졌다. 장 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술을 많이 마신 데다 평소 복용하던 수면제까지 먹어 깊게 잠이 든 탓에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며 “나는 함께 자던 딸이 연기가 난다고 깨워 겨우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박 씨는 안방에서, 장 씨 모녀는 다른 방에서 잠을 잤다. 당시 경찰은 박 씨가 애연가인 데다 이불에서 라이터 2개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담배를 피우려다 발생한 사고사로 결론 내렸다. 박 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연기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5개월 뒤인 올 2월.

장 씨 아버지가 경기 고양시 딸의 아파트에서 베란다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장 씨 아버지는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으나 장 씨가 “친척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며 잠시 외출을 시켰다. 아버지 장 씨는 이날 고양시 딸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하지만 장 씨 아버지는 다음 날 아침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딸 장 씨가 폐암 환자인 아버지가 담배 피우는 것을 가족들이 말리자 몰래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우다가 떨어져 숨진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당시 별다른 타살 혐의점을 찾지 못해 사고사로 처리했다.

단순 사고사로 처리된 두 사건은 올 3월 서울 서대문경찰서 강력계 이모 팀장의 집요한 추적으로 사건화됐다. 두 사건에 딸 장 씨가 관련됐다는 첩보를 받은 이 팀장은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파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어머니 박 씨의 몸에서 검출된 수면제는 장 씨가 처방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어머니와 이혼한 후 재혼한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 수령인이 재혼한 여성이 아닌 장 씨 이름으로 바뀐 사실도 발견했다. 경찰에 따르면 장 씨는 보험금 수령인을 놓고 아버지의 재혼녀와 크게 다퉜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동이 불편한 폐암 중증 환자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다는 사실도 의심을 품게 했다.

재조사에 나선 경찰은 3월 장 씨를 불러 조사했으나 장 씨는 “머리가 아파 다시 조사를 받으러 오겠다”고 말한 뒤 잠적했다. 장 씨는 잠적하기 전 친척들에게서도 상당액의 돈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장 씨 부모의 사망보험금은 장 씨가 받아 갔다.

경찰은 현재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장 씨 행방을 쫓고 있다. 경찰은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딸 장 씨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보험금과 함께 자신을 20여 년이나 버려둔 데 대한 원한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