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1층 세관 입국장. 한 중년 여성이 공항 관세행정관과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이 여성은 국내 입국 시 신고하지 않은 루이뷔통 가방을 트렁크에 넣어 몰래 가지고 들어오려다 세관 측에 걸렸다. 미화 400달러 이상 물품은 국내 반입 시 관세를 물어야 한다. “이 정도 물건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며 한참 말싸움을 하던 이 여성은 결국 세관 직원에게 한바탕 거칠게 화풀이를 했지만 1600달러짜리 영수증을 제시하고 26만 원가량의 관세를 문 뒤 가방을 가지고 갈 수 있었다.
○ 급증하는 개인 밀수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해외 여행객이 급증하면서 고가의 명품 손목시계와 가방, 보석류 등을 몰래 들여오는 부유층의 밀수행위가 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달 인천 제주 김해 등 국내 국제공항을 통해 해외로 출국한 국제선 여객은 394만여 명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치는 지난해 7월로 357만 명이었다.
문제는 해외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밀수행위도 증가하고 있는 것. 특히 최근에는 전문 조직꾼의 밀수보다 개인 여행객의 밀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날 한 검사대에서는 5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관세행정관과 옥신각신 입씨름을 벌였다. 이 여성의 가방에서 신고하지 않은 고가의 보석 장신구가 발견된 것. 이 여성이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친척이 선물로 준 것”이라고 둘러대자 세관 직원은 “선물로 받았든, 직접 구입했든 관계없다. 물건이 반입 기준을 넘으면 관세를 부과하거나 압류하는 것”이라고 냉정하게 답했다. 이 여성은 끝까지 납득하지 못한 듯 “내가 산 것이 아닌데 왜 관세를 물어야 하느냐”며 볼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인천공항세관이 1∼7월 적발한 일반 밀수범죄(해외 여행객 제외)는 186건(20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30건(547억 원)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개별 해외 여행객의 밀수범죄는 297건(117억 원)에서 328건(약 307억 원)으로 늘었다. 금액으로는 3배 가까이나 늘어난 것이다. 특히 고가 명품 등을 쇼핑한 뒤 인천공항으로 몰래 들여오거나 허위로 신고해 적발된 관세사범은 292건으로 지난해 207건에 비해 41%나 늘어났다.
유치품 창고를 관리하는 한 직원은 “지난달 18일부터 최근까지 여행객들에게서 적발한 명품 가방과 핸드백만 무려 4000개가 넘는다”며 “단골로 걸리는 해외 여행객의 경우 밀수 의심자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 진화하는 밀수방법
일부 여행객은 명품 물건이 적발되자 “이것은 ‘짝퉁’”이라고 둘러대는 모습도 보였다. 태국 방콕에서 귀국한 두 20대 여성은 태연하게 ‘여행자 세관 신고서’에 ‘면세범위가 넘는 구입품이 없다’고 표기한 채 입국장을 나서려다 관세행정관에게 걸려 혼쭐이 나기도 했다. 입국장에서 물건 때문에 적발된 사람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순순히 관세를 물고 찾아가는 편.
밀수 적발 건수는 늘고 있지만 요즘은 일반인도 워낙 수법이 교묘해져 밀수품을 모두 적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값싼 악기를 들고 나가 고가의 악기를 구입한 뒤 들고나간 악기는 버리고 헌 악기통에 고가의 악기를 넣어올 경우 이를 구별하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해외 여행객의 마약 밀수도 늘고 있다. 지난해 해외 여행객의 마약밀수는 시가 11억 원 상당(16건)으로 소규모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236억 원(14건)에 이를 정도로 마약 밀수 규모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 세관 측의 설명이다. 인천공항을 통한 밀수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올 들어 수입이 금지된 다이어트제(26억 원)를 비롯해 전자담배 니코틴 농축액(14억 원), 치과용 임플란트(18억 원) 등이 적발됐다. 김규진 인천공항세관 홍보담당관은 “주로 유럽과 홍콩 등에서 귀국하는 여행객들이 고가의 제품을 몰래 들여오는 사례가 많지만 모든 여행객을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여행에 동반한 가족이나 동료 등을 통한 대리 밀반입 행위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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