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자신을 지지하며 중도 사퇴한 후보에게 2억 원을 건넨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참에 각종 제도를 정비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을 야권의 후보 단일화를 저지할 명분으로 적극 활용할 태세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곽 교육감 사건을 언급하며 “선거 구도를 왜곡하고 후보자를 부정한 방법으로 제거하는 게 소위 후보 단일화 과정”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야권에선 후보 단일화라는 ‘큰 장’이 섰다. 선거기탁금을 납부하고도 후보직을 내놓은 후보만 87명이었다. 이 중 선관위에 ‘후보 단일화로 사퇴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후보는 27명이었다. 곽교육감에게서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는 당시 선관위에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한다고 신고했다.
정치권에서는 단일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단일화 시점이나 방식을 정하는 게 아니라 사퇴할 후보가 단일화 이전까지 사용한 선거비용을 어떻게 보전해줄 것이냐의 문제라는 데 이견이 없다. 선거를 끝까지 완주해 15% 이상 득표하면 국가에서 선거비용의 대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중도 사퇴할 경우 그동안 쓴 선거비용을 다 날리기 때문이다. 결국 곽 교육감도 ‘단일화의 덫’에 걸렸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한나라당 김소남, 임동규, 주광덕의원 등은 선거일에 임박해 후보직을 사퇴하지 못하도록 후보 사퇴시기를 제한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각각 제출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 방지법’으로 불리는 만큼 야권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아예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광역단체장과 교육감을 러닝메이트로 선출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곽 교육감 사건은 교육감 직선제에서 잉태된 ‘예고된 재앙’”이라며 “지난해 전국에서 치러진 교육감 선거는 선거와 정치중립이 양립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정당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한 현행 교육감 선거 제도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같은 당 정두언 여의도연구소장도 29일 MBC와 KBS라디오에 잇따라 출연해 “차제에 교육감 직선제는 뜯어고쳐야 한다”며 “서울시장과 서울시교육감이 러닝메이트제로 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 도입된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우려는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무엇보다 개인이 치르기에는 선거비용이 너무 많다. 서울시교육감의 법정 선거비용은 38억 원이 넘는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부하 직원에게서 인사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것도 직선제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많다.
지난해 전국 교육감 선거에서 선거비용을 보전 받은 후보는 전체 81명 중 69%인 56명에 불과했다. 이들도 1인당 평균 11억8000만 원을 써 9억4000만 원을 돌려받았다. 2억 원 넘게 손실을 본 셈이다.
한나라당 이철우, 원유철 의원은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선거를 치르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각각 냈다. 하지만 정당이 교육감 선거에 개입하면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친다는 반대논리에 막혀 있다. 민주당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간사인 안민석 의원은 “교육감을 뽑는 방식은 임명제에서 학교운영위원회 간선제로 바뀌었다가 직선제로 진화돼 온 것”이라며 “문제가 터졌다고 해서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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